여성 작가들 거침없는 '은밀한 수다'
여성 작가들 거침없는 '은밀한 수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7.03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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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아픈 사랑

[북데일리] 아찔한 높이의 킬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2012. 문학사상)은 섹스를 주제로 한 소설이다. 남자 작가들의 <남의 속도 모르면서>(2011. 문학사상)에 이은 여성 작가 6명(구경미, 김이설, 김이은, 은미희, 이평재, 한유주)이 들려주는 수다가 흥미롭다.

<세트 플레이>에서 김이설은 주인공(성철) 고등학생의 탈선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채팅으로 만남을 유도해 아줌마와 관계를 갖고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이야기다. 갈취한 돈으로 피시방 게임비를 내고 좋아하는 여자애와 노래방에 가는 게 전부였다. 단순하게 돈이 필요했고 섹스는 어렵지도 않았다. 술에 찌든 아빠에게 맞아 반신불수가 된 형, 부업 상자를 끼고 사는 엄마, 아무도 성철에게 관심이 없었다. 성철은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뉴스에 나올 법한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평재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남녀 사랑과 욕망에 음악을 더한 이야기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났을 때 서로를 탐구하고 다가가며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베토벤의 소나타 ‘크로이처’의 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섹스와 음악은 묘한 어울림이 있다. 때로 강렬하게 때로 부드럽게 음악이 흐르듯 사랑의 강약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때문에 이 단편은 사랑보다는 베토벤의 음악이 더 강하게 남는다.

김이은의 <어쩔까나>는 격정적인 사랑을 말한다. 양반집 주인 아가씨 와 노비의 사랑으로 조선시대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 때문에 전부를 버릴 수 있고,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 언제나 은밀하고 달콤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소설도 있다. 한유주의 <제목 따위는 생각나지 않아>에서 사랑은 권태로운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한 때는 절절하게 사랑했을 사이지만 남은 건 드러나지 않은 증오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다. 구경미의 <팔월의 눈>에서 주인공에게 사랑은 사치였고 제목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스스로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은미희의 <통증>에서 주인공의 사랑이 그러했다. 연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 자체가 상처이자 통증을 안긴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끊임없이 남자의 연인을 미워하고 질투한다. 남는 건 지독한 통증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사랑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사랑을 들라면 연민일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연민이었고 자기애였다. 열정적인 사랑이야 그 뜨거움이 가시면 시들해지지만 연민은 질기고도 끈질겼다. 상대가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 연민은 새록새록 자가발전하면, 스스로를 부추겨 세우고, 더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그렇게 상대에게 흐르곤 했다. 그 희생적 사랑도 자기만족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법.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행복해하는 점에서 모든 사랑의 본질은 자기애였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던가. 처음부터 상처받고 아픔을 생각하며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없다.’ p. 218~219

여섯 작가가 들려주는 사랑 혹은 섹스는 기대만큼 은밀하지 않았다. 은밀함은커녕 쓸쓸했고 아팠다. 남자 작가들의 <남의 속도 모르면서>와 비교하면서 읽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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