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에 담은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
활자에 담은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5.19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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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소설상 '와일드 펀치'...가족에 대해 묻다

[북데일리] 관계란 쉽지 않다. 가까운 사이엔 지켜야 할 소소한 것들이 많고, 낯선 사이엔 갖춰야 할 예의가 많다.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의 세심한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해서 우리는 종종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타인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내게 중요한 사람은 둘이다. 남편 강수와 아들 완주. 난 그외에 더 값진 것을 갖기에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다. 물건을 고를 때는 신중하고, 버릴 때는 신속하다. 사람에 관해서는, 복잡한 생각을 오래하기 싫어하는 타입이다.’ p. 8

창비장편소설상의 5회 수상작 기준영의 <와일드 펀치>(창비. 2012)의 시작은 어떤 결말을 예측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건 사람에 관해서 화자인 ‘현자’에게 중요한 사람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설은 카페를 운영하는 현자와 강수 부부에게 반갑고도 불편한 손님이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그들은 각각 부부의 어린 시절 친구라 할 수 있는 미라와 태경이다. 그들은 당분간 현자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 한 때, 친한 사이였지만 현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이다. 태경은 이혼과 사업 실패, 사랑하는 이로의 배신으로 자살까지 시도했고 미라는 동거남의 폭력으로 상처받은 심신이었다. 현자 부부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새로운 관계로 인해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점차 서로의 상처를 꺼내놓고 조금씩 위로를 받는다.

각기 다른 모양과 다른 크기의 상처를 껴안고 살기에 다른 이의 아픔엔 무관했던 그들은 이상한(?)동거를 통해 몰랐던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현자네 가족 3명으로 시작했지만 미라와 태경의 등장과 미라를 통해 알게 된 우영과 그의 병든 엄마까지 7명이 한 집에 모여든다. 같은 공간을 나누고,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해도 온라인에서 만난 익명의 존재보다 더 적은 말을 나누는 게 현대인의 모습은 아닐까. 어쩌면 내 감정에 공감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름이 바로 타인인지도 모른다.

소설은 좀 독특하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전개되는 방식이나 인물의 심리를 주변의 상황을 묘사하고 해설하는 표현이나 대화 방법이 그렇다. 특별한 사건 없이 환경을 설명하는 부분은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낯선 타인에서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미라와 태경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듯한 대화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소설 속 다른 인물들의 대화 모습도 다르지 않다.

“자기, 손은 이제 어때요?”

“거의 나았네요.”

“그럼 다른 것도 괜찮아지겠죠.”

“아니, 정말 힘들어요.”

“하나 정돈 내가 받아줄게요. 어디 말해봐요.”

“내가 아무 짝에도, 아무한테도 쓸모가 없는 거 같아서 돌겠어요.”

“안 받을래요. 그런 건 나 혼자 못 받아요.”

“손 나았으면 나 팔베개해줘요.”

“네, 그럴게요.” p. 233

기준영은 소설을 통해 소통을 외치지만 정작 진정한 소통엔 목말라 하는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을 보여준다. 타인이었던 다양한 인물들이 이층집에 살게 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묻는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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