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돈 주고 산 '괴짜 수집광'
'파리'를 돈 주고 산 '괴짜 수집광'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08.16 0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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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 모으다 가산 탕진?... 컬렉터를 통해 그림 읽기

[북데일리] 하루는 물건을 파는 이가 찾아왔다. 종이로 열 번 이상 싼 것을 펴보니 바싹 말린 파리였다. 팔러 온 이의 설명이 가관이었다.

"이것은 왕희지(307~365)가 임서할 때 파리가 붓끝에 모여들자 미워서 잡은 것으로, 지금까지 보물로 전해온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면 허풍으로 들어 넘길 말이다. 허나 그는 왕희지 시대의 파리라는 얘기에 후한 값을 치르고 샀다. 그 파리를 산 남자는 그림과 골동 속에 미쳐 살다 가산을 탕진해 끼니를 잇지 못했다.

이 정도면 대단한 컬렉터가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은 '조선의 으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 이조묵이다. 그의 컬렉션은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 회화사의 대가 그림을 망라했다.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 글항아리. 2010)에 나오는 이야기다. 책은 그림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 그림에 미친 이들의 보고서다. 게 중에는 왕족을 빼놓을 수 없다. 성종과 연산군 그리고 안평대군이 그렇다. 왕들의 미적 감각과 그림과 관련된 기호는 이색적이다.

성종은 수집가를 넘어 '화가'였다. 책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엔 성종이 그림을 너무 그려 염려스럽다는 신하들의 글이 성종 6년부터 24년까지 나온다.

폭군 연산 역시 미술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다. 연산은 기생 그림(동산휴기도와 같은 것)을 즐겼다. 책은 "궁중 미술의 발전 측면에서 볼 때 연산은 파격적 스타일의 서화를 즐김으로써 제도적 벽을 제거해줬다"고 전한다.

안평대군은 서화를 사랑하여 누가 조그마한 쪼가리라도 가지고 있다고 들으면 반드시 후한 값으로 샀다. 그중에서 좋은 것은 골라 표구를 해 소장했다. 그러나 전체 174점 중에 딱 한 점 전해오는 게 바로 안견의 '몽유도원도'다.

보통 사람으로 가장 뛰어난 근대의 컬렉터는 오세창이다. 그는 우리나라 서화 수장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애국적 서화수집 활동을 했다. 돈 몇푼에 일제의 손에 사라지는 귀한 '자료'를 지켰다는 점에서 애국적이다. 책은 10만 석 거부의 상속자인 전형필이 골동서화를 수집하며 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세운 것이 오세창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책을 보다 보면 '제발'이라는 낯선 단어와 마주친다. 제발은 서화 등에 쓰는 제사와 발문을 말한다. 책이 전하는 정의는 이렇다.

'화가가 제목 정도만 간단히 쓰기도 하고,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설명이나 당시의 기분 등을 적는 것이다. 혹은 감상자가 그림에 대한 감상과 평을 쓰기도 한다.' -282쪽

제발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 한 예가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다. 말을 타고 가면서 선비가 꾀꼬리 한쌍의 노랫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며 상념에 잠긴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 왼쪽 위에 쓴 제발은 다음과 같다.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가 밀감 한 쌍을 올려 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고 있구나

이 제발의 '깊은 뜻'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적었다.

'버들가지 사이를 베틀 북처럼 부지런히 오가는 꾀꼬리가 안개와 비를 엮어 봄강을 수놓는다는 이 시구를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화면 속 선비가 봄날 가는 실비를 맞고 있음을 알았고, 그 실비에 그의 시심조차 젖고 있음을 알았다.' -291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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