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명의 시원 '코리안 루트' 찾기
우리 문명의 시원 '코리안 루트' 찾기
  • 이동환 책전문기자
  • 승인 2009.05.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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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가 연 위대한 문명의 길, 발해연안서 찾다

[북데일리] 서울 송파에 있는 석촌동 고분군 밑으로는 지하차도가 나있다. 1980년대 초 백제고분로를 신설하면서 석촌동 고분의 가운데를 지나는 노선을 계획했었다. 공사를 하면서 고분을 비롯한 유적지가 파괴되는 지경에 처한다. 한 교수가 석촌동 고분군 보호운동을 전개한다. 결국 차도는 고분군의 아래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 덕에 우리들은 지금 백제고분공원을 볼 수 있다.

1997년 풍납토성 내에 위치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 왕성에서 출토될 만한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된다. 그럼에도 공사가 계속 진행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이때 공사의 중지를 위해 신문사와 문화재청 등에 적극적으로 알려 이를 막은 교수가 있다. 발굴해본 결과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성인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커졌다. 삼국사기에서조차 하남 위례성의 위치를 모른다고 했고, 그동안 무수히 많은 논란이 일었던 백제의 초기 수도로 추정되는 장소를 찾았던 것이다.

위에 소개한 두 건의 일을 벌인 교수는 동일인이다. 바로 선문대의 이형구 교수.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발해연안문명’이다. 몇 년 전 이형구 교수는 <한국고대문화의 비밀>이라는 책을 통해서 동이족의 문명 발생지를 발해연안지역으로 봤다.

신간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성안당.2009년)는 이형구 교수가 자신이 주장하는 ‘발해연안문명’ 지역을 직접 방문해 실증적인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탐사단은 2007년 7월9일부터 8월1일까지 24일간 동이족의 주 활동무대였던  시베리아를 비롯해 중국의 발해연안과 만주를 조사했다. 이를 경향신문에서 2007년 10월부터 1년간 35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이 책은 신문 연재 내용을 대폭 수정 보완한 결과물이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이는 싼줘덴 유적지는 2007년 발굴이 완료됐을 만큼 최근에 연구된 지역이다. 이 유적은 BC 2000년부터 BC 1500년까지 번성한 샤자덴 하층문화에 속한다. 이곳의 성은 토성에서 석성으로 접어드는 전형적인 초기 형식의 석성인데, 고구려성의 특징인 치(稚)가 13군데나 있다. 이러한 축성방법은 고구려와 백제로 이어지며, 조선시대에 쌓은 수원 화성의 공상돈성에 있는 돈대(墩臺)에 그대로 볼 수 있을 만큼 우리 축성술이 분명하다.
 
이런 흔적은 싼줘덴에만 그치지 않는다. 요서지방 곳곳에 확인된 것만으로도 8,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동이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있는 유적지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싼줘뎬의 대규모 석성. 확인된 치(稚 )만 13개나 된다. 샤자뎬 화층문화(고조선 시기) 석성으로 관심을 모은다. (23쪽)

중국인들은 자신의 문명이 시작된 장소를 ‘중화 제1촌’으로 ‘차하이’와 ‘싱룽와’를 꼽는다. 그러나 이형구 교수는 “이 두 곳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 일본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문명의 젖줄인 발해연안문명이 태어난 곳”(56쪽)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곳은 “동이 제1촌“으로 불러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곳은 현재 지명으로는 랴오닝성 푸신스에서 동북으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장소다.

이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은 옥과 용 그리고 빗살무늬토기다. 용의 형상은 돌무더기에 나타나있다. 저자는 “용의 전체 길이는 19.7미터이고 몸의 폭은 1.9~2미터에 달한다.”(61쪽)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용 모양의 돌무더기는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55기나 되는 주거지가 있다. 용의 머리 방향은 215도를 이루고 있는데, 이 지역은 과학적 측정결과 8,000년 전의 유적지라고 한다.
 
요컨대 8,000년 전에 이미 용을 형상화하고 신성시했다는 말이다. 중원지역에서 발굴된 용의 형상은 6,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 제일 오래됐다. 그러니 오랑캐의 땅에서 중원보다 2,000년이나 더 오래된 용이 발견되었으니 놀랄만한 일이었다. 이곳은 현재 중국 영토이기는 하지만, 이 문명을 만든 사람들은 바로 동이족이다. 황하문명의 우월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문명이 오랑캐 문명보다 열등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초기 동북아 신석기 시대 문화를 대표하는 표지(標識) 유물이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시베리아에서 전래되었다고 말해왔다. 그렇지만 발해연안에서 발굴되는 빗살무늬토기의 연대는 시베리아보다 1,000년 이상 앞서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저자가 시베리아에서 시작해 연해주와 발해만 연안을 찾는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코리안 루트’를 찾기 위해서다. 이는 우리 한(韓) 민족의 시원을 찾고자 하는 작업이다. 탐사단은 발해의 유적지가 있는 연해주 체르나치노유적을 찾아간다. 이 유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이 함께 조성한 유적지이다. 저자는 그 의미를 이렇게 읽어낸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한(韓)민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특정 민족만의 시원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순혈주의나 국수주의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우리 역사는 결코 한민족만의 역사가 아니라 주변 종족과의 융합을 통해 창조해 낸 역사다. 이 깨달음은 지나친 민족주의로 빠지지 않게해 주었고, 이제는 다른 나라의 영토에 있는 유적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 봐야 뭐하느냐는 식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381쪽)

이형구 교수의 지식과 이 지식을 뒷밭침하는 유물들을 찾는 탐사단의 여정은 독자들에게 한국의 고대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단순한 흥미로움을 넘어서 지적인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차하이와 동시대 유적인 싱룽와유적. 대규모 주택단지를 방불케 한다. (64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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