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국 영화제작 시스템의 전반적인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제작사와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갈등은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보여 합리적인 대안마련이 시급할 실정이다.
강 감독의 사과는 두 인기 배우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인간적인 배려였을 뿐 영화 산업에서 제작과 매니지먼트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그 상처를 봉합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파문으로 배우 설경구가 `본의 아니게` 영화계와 팬들에게 `돈 안밝히는 배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지난 23일 밤 주요언론사 기자들과 만난 강 감독은 실명을 거론하며 "소위 연기파 빅3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중 설경구 정도가 유일하게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설경구가 지분요구를 했다는 소문에 전화로 직접 확인해 보니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며칠 뒤 문자메시지에는 `그런 말이 돌았다는 것 자체가 세상을 잘 못 산 거 같다`는 내용이 도착했다"고 밝혔다.
강 감독은 최민식, 송강호와 달리 설경구와는 이미 흥행작 `실미도` `공공의 적`에서 감독과 배우로 손발을 맞춘 일이 있었다.
강감독의 발언에 발끈한 최민식과 송강호가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사이 설경구는 이미 지난 9일 촬영을 시작한 차기작 `사랑을 놓치다`(감독 추창민)에서 송윤아와 함께 애틋한 멜로연기를 펼치고 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이은 설경구의 두번째 멜로물인 이 영화 역시 제작과 배급을 강 감독이 대주주인 시네마서비스가 맡았다.
지난 3월 설경구는 영화 전문지 스크린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배우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크린이 흥행 성적과 국내 외 영화제 수상실적, 해외 지명도, CF 파워, 개런티 수준 등 다양한 요소들에 가중치를 부여해 종합적인 영향력을 평가한 결과였다.
이와 더불어 그의 인간적인 면도 다시 부각되고 있는데 화제작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 함께 출연했던 문소리는 마초기질의 설경구가 스태프들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욕을 한다고 `폭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아시스`에서 장애인 연기로 온 몸이 마비되는 증세까지 나타나 탈진하게 된 문소리와 베드신을 찍던 설경구는 "야, 이년아. 나도 힘들어"라고 독려했단다.
설경구를 가르친 최형인(56) 한양대 교수(연극영화과)는 지난해 9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설경구에 대한 평가를 욕 잘하는 `설경구식`으로 추켜세웠다.
최 교수는 "복잡한 상황 연출을 잘해 연출가가 될 줄 알았는데 그 `병신`이 그렇게 유명해 질줄 몰랐다"며 "경구는 오버 안하고 심플하면서 파워있는 연기를 하는 가장 배우같이 생긴 배우"라고 제자를 회고했다.
5년 동안 `씨네21` 기자를 지내고 현재 뉴욕통신원으로 있는 백은하씨는 20명의 배우와 가졌던 밀착 인터뷰를 모아 펴낸 책 `우리시대 한국배우`(2004. 해나무)에서 설경구에 대해 "한 번 보면 무섭고, 두 번 보면 재밌고, 세 번 보는 정드는 남자"라고 소개했다.
한편, 남이 미처 보지 못한 특징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관찰력과 세련된 문장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백은하씨는 이 책에서 설경구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른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운 제목을 달아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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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노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