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365-35] 번역-세상을 보는 또다른 창
[책읽기365-35] 번역-세상을 보는 또다른 창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4.1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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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탄생> 20년 번역가의 철학과 노하우

[북데일리] <번역의 탄생>은 번역이란 프레임으로 우리말을 되돌아보게 한다. ‘번역 투’라는 말이 있듯, 우리말은 일본어와 영어로 적잖이 훼손 됐다. 작년 한 해 번역 서적은 총 1만 3391종. 신간서적 전체의 31%를 차지한다. 따라서 번역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번역 하는 이들이 우리말을 잘 이해하고,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번역을 하면서 나는 한국어에 눈떴다. 작가가 되어 한국어 자체만을 놓고 씨름했더라면 한국어의 개성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 일본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다 보니 한국어의 남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한국어답다는 개념이 차츰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국어가 이미 번역서를 통해 영어와 일본어에 상당히 깊이 물들었음을 깨달았다.”

20여 년간 번역 일을 해온 이 책의 지은이 이희재 씨의 고백이다. 번역이 제2의 창작임을 굳이 들지 않아도 십분 공감이 간다. 일선에서 작업해온 까닭에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오류와 문제점을 세세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번역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폭넓은 경험이 이 책의 강점이다. ‘올리브 색’이란 단어를 옮길 때 ‘올리브 빛’이라고 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음으로 '쑥색'이라고 하라거나 ‘살색은 '살구색'이라고 써야 된다.

책엔 매 장마다 지은이의 실전 번역 사례를 덧붙였다. 한 챕터에선 영어 단어의 뜻을 '한자어 동사와 토박이 동사‘로 구분지어 설명했다. 예컨대 ’disclose‘는 '폭로하다'란 뜻이지만 '까발리다'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다. ’evade‘는 ’회피하다‘는 의미지만 ’발뺌하다‘로 하면 더 좋다. <영한사전에 없는 풀이말-부사>편은 특히 이목을 끈다. ’abruptly‘란 단어를 저자는 ‘다짜고짜, 버럭, 불쑥, 쑥, 뚝, 울컥’이란 다양한 단어로 풀이했다.

번역은 창작에 비해 크게 홀대당하고 있다. 번역자와 작가의 대우와 세간의 인식은 하늘과 땅차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제대로 된 번역가의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출판사가 낸 자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번역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번역은 짝짓기다. 단어의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 두 말에 담긴 정신의 핵심을 대응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번역은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며 ‘두 말에 담긴 정신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책은 번역서로 한정짓기에 아쉬울 만큼 글쓰기 책으로서의 효용을 제시한다. 문법부터 표현법까지 주장과 사례가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이를테면 저자는 “<suddenly>는 ‘갑자기’로 천편일률적으로 옮길 일이 아니라, '홱, 확, 불쑥, 와락, 덥석, 뚝, 덜컥, 왈칵, 버럭' 등으로 구체적 상황에 어울리는 생생한 표현을 쓰자”고 권한다. <suddenly>란 단어만 빼면 국어 작문법인 셈이다.

명사 <것>자의 남용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것>자를 마구 쓰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주어와 목적어 자리에 명사가 오는 외국어 번역체 영향”이라며 “좀 다양하게 나타내주면 좋겠다”고 전하고 있다. 예컨대 ‘수동태보다 능동태를 쓰는 것이 한국어답다‘라는 문장이 있을 때, 문장 속의 <것>은 ’쪽‘으로 바꿔주는 식이다.

어느 한 분야에 천착하다보면 길이 보이고, 도가 트이는 법이다. 이 책은 20년 동안 번역이란 분야에서 일한 사람이 내놓은 ’임상보고서’라고 스스로 밝힌 저자는 ‘좁히기’와 ‘짝짓기’, 뒤집기‘와 같은 개념으로 번역의 노하우와 철학을 담았다. 번역가 지망생이나 현직 종사자들, 그리고 글쓰기 참고자료를 찾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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