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화합과 평화 도모? 말도 안돼!
스포츠가 화합과 평화 도모? 말도 안돼!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1.1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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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실험으로 인간의 비합리성 파헤쳐

[북데일리] 월드컵과 올림픽이 열리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스포츠를 통해 전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영국의 심리학자 스튜어트 서덜랜드는 가당찮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간 <비합리성의 심리학>(교양인. 2008)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시합이 서로 대적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관계를 좋게 해준다고 믿는지 이상하기 짝이 없다”고 일갈한다.

근거는 스포츠 경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추태다. 각종 반칙과 편법을 서슴지 않는 선수들, 상대팀 선수와 팬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때로는 주먹질도 마다 않는 응원단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의 주장을 더 확실하게 해주는 실험이 있다. 1940~50년대 몇 년에 걸쳐 무지퍼 셰리프가 수행한 실험이다. 책에 따르면 당시 피험자들은 12세 전후의 미국 중산층 개신교 가정의 백인 소년들이었다. 아이들은 여름 캠프에 초대 받아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실험자들은 캠프 지도 교사, 카운슬러 등으로 가장해 소년들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전혀 모르던 아이들은 한 합숙소에 머물면서 서로 친구를 만들었다. 4일 후 각자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물어보고 두 집단으로 갈랐다. 이때 가장 친하다고 호명한 친구와는 떨어지게 됐다.

두 집단의 아이들은 한 곳에서 모여서 식사를 했지만, 생활은 따로 했다. 그러다보니 각각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었고, 서로 독수리와 폭풍이라는 조직명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티셔츠에 조직명을 새겼고,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를 개발했다.

그렇게 4일이 지났다. 다시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묻자, 10명 중 9명은 처음 때와 달리 같은 집단에 있는 다른 친구를 지목했다.

이후 실험자는 두 집단에게 소프트볼과 축구 같은 대항 시합을 시켰다. 이긴 집단에게는 캠핑용 나이프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좋은 분위기로 게임이 이뤄졌으나, 곧 승부에 집착했다. 부당한 플레이와 속임수를 비난하고 고발했다. 시합이 끝난 후에는 식당에서 줄을 설 때 서로 부딪치고 밀었다. 한 밤중에 다른 집단의 숙소에 들어 가 침대를 뒤엎고 소지품을 내팽개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두 집단은 완전히 갈라섰다.

셰리프는 이런 실험을 매년 반복했는데, 결과는 늘 똑같았다. 한 번은 폭력 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과열돼 실험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국가 대항 시합이 친선을 도모하기는커녕 적대감만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또 “이 실험은 다른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싫어할 수 있다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동기를 완벽하게 설명했다”고 덧붙인다.

이처럼 책은 100가지 심리 실험을 통해 인간의 비합리성의 비밀을 파헤친다. 영국의 석학 리처드 도킨슨은 이 책을 두고 “너무나 흥미로운, 보기 드물게 잘 쓴 책“이라고 평한 바 있다.

한편 서덜랜드는 1998년 세상을 떠났다.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1992년 출간돼 그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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