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썸머 나이트` 진추하에 대한 시인의 연정
`원 썸머 나이트` 진추하에 대한 시인의 연정
  • 북데일리
  • 승인 2005.11.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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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커트한 뒷머리, 능금빛 얼굴의/ 여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신청곡은 졸업의 눈물, 사랑의 스잔나 진추하가/ 홍콩의 밤 열기를 담은 목청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 그 여학생은 내게 능금빛 미소만을 쥐어주고/ 달아났다. 금성 트렌지스터 라디오 속으로 들어가 / 그녀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날들..”(본문 중)

시인 유하는 이제, 영화감독 유하로도 불린다. 그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등장했던 교복, 이소룡, DJ 서금옥 등의 시대 소품들은 아련한 70년대의 추억을 되짚는다. 소품 중 유하에게 더욱 특별한 것은 중국가수 진추하(48)다.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문학과 지성사. 1995)에 실린 ‘진추하, 라디오의 나날’에서도 진추하를 향한 특별한 연정이 드러난다.

`금성 트렌지스터 라디오`를 통과하는 추억은 ‘진추하’라는 존재를 통해 기억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 현수가 신청하는 라디오 사연에서 다시 한번 유하는 진추하를 추억한다.

“다음은 역삼동에서 김현수씨가 띄워준 사연입니다. 한 여학생이 제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오던 밤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내 마음은 늘 그 밤의 거리에 가있습니다. 그땐 그녀가 나와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 믿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사람 때문에 눈물 흘립니다. 나는 아무말도 해줄 수 없습니다. 가끔은 그녀 때문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져요. 버스에 두고 내린 우산처럼 그녀를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DJ 서금옥의 목소리를 통해 울려 퍼지는 현수의 가슴 아픈 사연은 진추하와 아비가 부르는 ‘어느 여름날 밤(One Summer Night)’을 타고 심금을 연주한다.

유하 특유의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채워진 1970년대의 기억은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별’과 ‘퇴락’ 으로 명명된다.

“그렇게, 열다섯 살의 떨림 속에 살던 나와 그녀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트렌지스터 라디오에 건전지처럼 업혀 있던 그 풋사랑의 70년대도, / 퇴락한 진추하의 노래를 따라/ 붉은 노을의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으리”(본문 중)

열다섯 소년과 소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유하가 기억하는 70년대의 비릿한 잔상을 축약한다. 70년대 소년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진추하는 말레이시아 최고 갑부의 부인이 되어 지난달 한국을 찾아 노래를 다시 불렀고, 영화 속 현수가 사랑하던 한가인은 소녀에서 아내가 됐다.

아이러닉한 삶의 우연을 지긋이 바라보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은 영화의 모태가 된 유하의 70~80년대를 때론 냉소적으로, 때론 뜨겁게 ‘추억’한다.

(사진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스틸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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