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청]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다
[임재청]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다
  • 임재청 시민기자
  • 승인 2008.07.09 2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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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에 갔습니다. 갈매기들이 잠시나마 동행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해명산(海明山)으로 갔습니다. 이른 봄이라 해명산에는 봄꽃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산에 올랐습니다. 머지않아 호흡이 빨라졌습니다. 그럴수록 주위의 풍경이 흔들거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가나 바위에 앉아 쉴 때면 호흡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무엇보다도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기암절벽이며 산들이 어깨를 겨룬 산세의 위용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순간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깨닫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여행의 기술』에서 이와 같은 감정을 ‘작아진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산에서 부는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초록색 바람이라고 했을 때 산에서 느낌 또한 그냥 느낌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초록색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록색이 말해주듯 숭고한 자연 광경을 보고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저자 말대로 ‘산 옆에 있으면 네가 얼마나 작은지 보아라. 너 보다 큰 것,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행하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을 가슴에 간직하는 데 있습니다. 단순히 높은 산에 올랐다거나 몇 시간 만에 정상에 올라갔다거나 자랑하는 것은 진정한 산행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산행은 산의 높이가 아니라 마음의 높이에 오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워즈워스가 말한 ‘시간의 점’입니다. 그는 자연속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그 장면이 우리의 의식을 찾아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행의 기술』은 매력이 돋보입니다. 어느 여행서와 달리 여행의 심리적인 문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여행하면 시작과 끝이 보는 것이며 먹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물론 이것을 가볍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다운 여행의 기술은 곧 삶을 긍정하는 아름다음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가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몸은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여행하는 남들처럼 여유롭지 못해 정작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설령 떠난다고 해도 잠은 어디서 자야 할까? 노심초사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여행의 가짜 욕망입니다. 여행의 진짜 욕망은 플로베르가 말한 대로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라도 떠나는 것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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