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청] 꿈꾸는 이들의 운명 같은 책
[임재청] 꿈꾸는 이들의 운명 같은 책
  • 임재청 시민기자
  • 승인 2008.06.30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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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가끔 나이를 잊으며 삽니다. 사람마다 방법이 여러 가지이겠지요.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 그렇습니다. 그 시간만은 삶의 굴레에서 멀리 벗어납니다. 바쁘게 하루를 사는데도 삶이 재밌지 않는 세상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불안의 위험 수위가 올라갈 때면 나는 도서관에서 허허로움을 방류하곤 합니다. 만약 이런 자유마저 없다면 절망할 것입니다. 절망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습니다. <데미안>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이번 작품도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 책에 나오는 한스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슬프지만 그 가치마저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전히 우리들 마음을 출렁이게 합니다.. 일찍이 피타고라스가 주사위(정6면체)로부터 흙이 나온다고 했는데 헤세는 젊음 날의 사랑과 눈물 그리고 욕망의 삼각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스는 수재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신학교에 어렵지 않게 합격합니다. 하지만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아버지의 지나친 바람이 그를 흔들리게 합니다. 어쩌면 신학교라는 새로운 길에서 방황하는 건 인간의 나약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스의 문제는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불렀지만 정작 자신은 방만한 천재라는 것입니다. 결국 한스를 둘러싼 세계는 사회적인 전통을 강요합니다. 이것이 곧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수레바퀴 아래입니다.

이쯤에서 그의 죽음은 삶의 질서를 깨트립니다. 어른들의 잣대로 보면 쓸데없는 상념에 잡힌 몽상가의 죽음입니다. 톱니바퀴 같은 삶을 죽음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차선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들이 속물 같은 인간으로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물 같은 인간을 경멸하면 어떻게 될까요? 한창 공부할 나이에 한스는 그를 둘러싼 세상을 고민합니다. 그리고는 “삶이 무질서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질서화 된 삶에서 한스의 정신적인 고통은 쓸모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세속적인 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그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훌륭한 낚시꾼을 갈망합니다.

한스처럼 꿈을 간직하고픈 사람은 외롭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사는 것은 두렵습니다. 차라리 꿈을 포기하며 사는 것이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학 문제를 풀며 훌륭한 대답을 찾아내는 기쁨과 같습니다. 그러나 한스는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의 고통은 자신이 꿈꾸는 세계와 상반된 세계에 살아야 하는 막막함에서 아팠다는 것입니다.

나의 소소한 일상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요?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면 운명처럼 겪어야 하는 이 책의 기나긴 여정을 통해 묘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사람답다.”라는 울림이었습니다.

사랑이든 욕망이든 우리 삶을 움직이는 것은 행복한 사람에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곧 꿈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자기가 생각한 것을 믿으며 사는 것이 삶의 행복이며 무질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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