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비문 투성이 번역서
[기자수첩]비문 투성이 번역서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6.30 0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자가 이해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북데일리] 최근 읽은 <웹 3.0>(라이온북스. 2008)의 번역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단번에 읽히는 문장이 거의 없었다. 내용이 어려워서인가. 아니다. 서투른 한국어 실력이 만들어낸 비문(非文)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복사는 이익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티스트의 이익의 밸런스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익의 밸런스’다.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다. 전후 문맥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어진 문장을 함께 보면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구입할 기회를 늘리고 싶다면 앞에서 말한 전자서적처럼 곡의 데이터를 유료로 제공할 수도 있다. 이것도 공통통화로 했으면 하지만 자신들의 작품을 전부 수입원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이런 방법을 메인으로 이익을 올린다면 공통통화의 지위가 나름대로 향상될 필요가 있다.”

전자서적과 공통통화 등은 앞 장에 등장한 개념이니 무시하고 넘어가더라도, 문장 자체가 이상하다. 특히 두 번째 문장이 그렇다. 먼저 ’이런 방법’이 공통통화로 결제하는 방법을 말하는지, 곡의 데이터를 유료로 제공하는 방법을 뜻하는지 모호하다.

공통통화로 지불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했을 때도 문제다. ‘~할 필요가 있다’고 썼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가 빠졌다. 그러니 문장을 아무리 곱씹어도 머리에 들어올 리 없다.

‘나름대로’라는 단어가 이 문장에 어울리는지도 의문이다. 또 생략된 주어까지 포함하면 한 문장에 주어가 3개나 나와 읽기조차 벅차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책 곳곳에 정체불명의 문장이 등장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또한 보인다. 다음은 ‘인터넷 귀향, 여행‘이라는 제목의 글 일부분이다.

“귀향도 마찬가지다. 이를 테면 잘 아는 사이만 조회할 수 있는 00집의 홈페이지를 이용해 인터넷으로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대화하고 함께 있는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다.”

인터넷에서 귀향이라니, 무슨 말인가.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표현도 그런 뜻인가. 아니다. 추측컨대, 일본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일본어 번역본이다.) 각주를 달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아래 문장을 보자.

“CD플레이어만으로 듣는 것과 휴대음악 플레이어(MP3플레이어 등)와 CD플레이어 모두 들을 수 있는 것, 어느 쪽이 더 좋을까.”

휴대용 음악기기에는 휴대용 CD플레이어도 포함된다. 그런데 책에서는 마치 CD는 고정된 음악기기로만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써 놨다. 이후에도 그냥 MP3플레이어라고만 써도 의미가 충분히 통하는 것을 굳이 휴대음악 플레이어라는 용어를 고집해 혼란을 준다.

이 밖에 일본어 ‘の’를 그대로 번역해 조사 ‘의’를 남발하는 점, 국내실정에 맞게 설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문 그대로 옮긴 점, 용법에 맞지 않는 단어 사용 등이 아쉽다.

한 마디로 비문투성이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라는 역자에 감수자까지 있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이정도면 독서가 아니라 '해독' 수준이다. 

번역에 있어 중요한 것은 외국어 실력 이전에, 한국어 실력이다. 원문에 가깝게 풀이하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번역자와 출판사 모두에게 부탁한다. 제발 쉽고, 명확하게 번역해달라. 독자가 이해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