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유치한 인물 그리고 싶어”
요시모토 바나나 “유치한 인물 그리고 싶어”
  • 북데일리
  • 승인 2008.05.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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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항상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자기 자신을 막을 수가 없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올바른 사람이면 좋겠다.”

- <티티새>(민음사. 2003)

[북데일리] ‘베일에 싸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왔다. 첫 한국 방문이다. 그녀는 26일 오후2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편안한 느낌의 롱스커트와 카디건 차림이었다. 그 모습이 언뜻 <티티새>의 소녀 ‘츠쿠미’를 연상케 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국내 출판계의 일류(日流) 열풍을 주도하는 작가로 꼽힌다. 전작 <키친> <티티새> <하치의 마지막 연인> <하드보일드 하드럭>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바나나 현상’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 ‘요시모토 바나나’ ‘달빛그림자’ 네이버 ‘요시모토 바나나 팬카페’ 등이 활발히 운영 되고 있다.

이번 방문은 신작 <왕국 1,2,3>(민음사. 2008)의 출간을 기념해 이뤄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전작과 달리 ‘현대문명’에 대한 날선 비판이 깃들여진 작품이다. 그의 가치관 변화와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연작이다. 앞으로 <왕국>은 2권이 더 나올 예정. 총 다섯 권으로 마무리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번 기자 간담회를 통해 출산 후 겪은 변화와 작가적 신념을 밝혔다. 그녀는 대부분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말수는 적었지만, 질문에 임하는 태도는 진지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요시모토 바나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수줍은 인사와 함께 간담회가 시작됐다. 행사는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출산과 육아 활동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나.

- 아이가 태어난 지 3년 정도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아이의 영향이 작품에 미친다. 최근 일본에서 출간 한 작품들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작품들이다.

아이를 낳은 후 어떤 발전, 변화가 있었나(구체적으로)

- 지금까지는 남자의 심리를 깊게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아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남자에 대해 잘 알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등장인물들이 좀 예쁘게 그려졌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생생해 질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나의 생명 만을 우선시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 대해 여러 번 쓰고 싶었는데 이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책 <왕국>을 보면 주인공이 산에 살다 도시로 내려오는 설정이 있다. 자연주의 경향이 느껴지는 데 의도한 것인가.

- 이 작품을 썼을 당시엔 일본 내에서 자연주의를 부르짖는 외침이 있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래서, 왠지 조금 빠른 것은 아닌가 생각 했다. 이번엔 판타지를 그리고 싶었다. 주인공이 다른 세계에서 오는 설정이 그래서 필요했다.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죽음을 작품의 중요한 테마로 쓴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내 작품에 나오는 죽음은 현실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화 속의 죽음, 남은 사람들에 대한 죽음이다. 죽음이란 누구나에게 절대적인 평등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쉽게 말하지만, 죽음만큼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바나나 마니아’가 형성될 정도로 팬이 많은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젊은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 젊은 시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감수성이 매우 강한 시기다. 이런 감정들은 세계 여러 나라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것이기에, 내 소설이 많이 읽히는 것 같다.

일본에선 휴대폰 문학, 전자책 시장이 팽창되고 있다고 들었다.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 된 것처럼 매체 역시 다양해 질 것이다. 전자책 또한 많아 질 거다. 다만, 종이에 쓰인 소설을 읽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살아 있을 거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매체인 가가 아니라, 무엇이 쓰이느냐 그 내용이다.

<왕국>이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 아주 좋은 질문이다. ‘왕국’이란 제목은 약한 사람들의 ‘왕국’을 뜻한다. 이 세상에는 당당하게 발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소수자. 그런 사람들의 왕국을 그리고 싶었다. 이 소설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앞으로 2권을 더 쓸 예정이다. 5편까지 발표되었을 때 여러 인물을 합쳐서 그들의 ‘왕국’을 그리겠다.

소수자란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 쓴 것인가

- 나 같은 사람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을 난 잘 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굉장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나는 게이도 레즈비언도 아니지만,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매우 가깝게 지낸다. 사회 소수자라 불리는 사람들인데 공감대를 갖고 있다.

<왕국> 속에 있는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 자신이 투영된 캐릭터가 있다면.

- 주인공의 ‘할머니’. 앞으로 발표 될 두 책에서도 할머니가 굉장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에게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1인칭 소설로 쓰기 때문에 주인공을 그리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중간하게 금방 어른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찮은 일들로 하염없이 어린 시절을 연장하고, 중년을 죄책감으로 보내고, 많은 것들을 외면한 채 죽어 간다. …… 모두들 늘 앞으로 고꾸라질 듯 오 분 앞을 산다. 만약 그 시간이 일 년이나 십 년 앞이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 분 앞이면 그저 조급할 뿐이다. 모두들 서두른다. 에너지를 함부로 사용한다.”

- <왕국> 중

이번 작품에선 정원이라는 공간이 치유의 계기로 쓰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인간과 인간 사이에선 불가능 한 것이 많다. 하지만 식물은 다르다.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 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정원에 대한 책 자료를 많이 찾아 봤다. 죽기 전까지 정원을 가꾸다, 에이즈로 죽은 사람의 사진집을 봤는데. 그 안에 나오는 정원이 너무 멋있었다. <왕국>에 나오는 정원은 그 정원을 모티프로 삼았다.

전작에도 할머니와 얽히는 이야기가 많은데, 할머니를 자주 등장시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 나의 할머니나 어머니를 모델로 삼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의미에서 ‘모성’을 드러내기 위해 할머니를 쓴 것이다. 지혜는 갖고 있지만 성별은 없는 캐릭터로.

글쓰기가 본인에게 갖는 의미, 독특한 글쓰기 습관이 있다면.

- 작가가 되기 전에는 내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괴로움과 분노를 발산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작가가 된 후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썼다. 어떨 땐,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글을 쓰기도 한다.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나의 장점이다. 특별한 글쓰기 습관은 없다.

결혼하기 전의 자신, 20대를 추억한다면.

- 20대라면 정말 옛날인데... 나의 아픔을 글로 쓴다는 것이,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대는 인기는 많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자신감을 갖기 힘든 시기였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자신감 있게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다.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있나.

- 슬픈 일이지만 없다. 일본에 많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다.

한국에선 일본소설 열풍이 불고 있다. 일본 작가들은 이런 현상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한국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작가가 있나.

- “왜 한국에서 일본 소설이 읽히는 것일까” 라는 이야기가 화제는 된다. 한 작가와 한국어로 번역 된 책의 표지를 보고 감상을 나눈 적도 있다. 내 소설은 이탈리아에서 인기가 많은데, 이번 계기를 통해 한국을 포함 해 아시아에 관심을 둘 예정이다. ‘요시모토 나라’씨 역시 독일에서 오래 생활하고 활동했지만, 유럽이 아닌 한국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아시아 쪽으로 많은 관심을 두게 될 것 같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계획은 없나.

- 아마도 쓰기 힘들 것 같다. 연령이 너무 낮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1인칭 소설을 쓰는 데, 그러면 그림책이 되어 버릴 것 같다. 12-14살 등장인물은 몇 편 쓰기도 했다.

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쓸 계획은 없나.

- 에세이는 많이 썼다. 한국에 아직 소개가 많이 안 되었을 뿐이다.

오에겐자부로가 어떤 인터뷰에서, 요시모토 바나나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신이 너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을 넣은 이번 작품은 그런 지적을 의식 한 건가.

- 그런 생각의 차이엔, 세대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작가로서의 존재양식에 관한 문제이다. 내 소설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깊이 감춰져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다. 북한에 관한 문제, 자연파괴 문제 등을 다뤄왔다. 살인, 가정파괴 문제 또한 그렇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곱씹어서 녹여내기 때문에 깊게 읽는 사람만이 감지 할 수 있을 것 이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자식을 죽이는 엄마들, 그런 사회현상에 대해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작품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우화의 한 요소 중 하나로 다루고자 한다. 오에겐자부로 선생님은 머리가 좋은 분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감춰둔다 해도 그걸 바로 아실 것 같다. 예컨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씨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작품 안에 무엇을 숨겨 놓았는지 말이다.

앞으로 그려나갈 주인공이 궁금하다. 어떤 모습이 될 것 같나.

- 예술 하는 사람들은 7살까지 체험하고 느낀 것이 ‘기초’로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는 여러 가지로 공부해서 축적하는 시기다. 그리고 마흔이 넘으면 어떻게 하면 7살 때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느냐 그게 전부일 것이다. 내 작품 속 인물들이 7살 때처럼 순수해질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한다. 앞으론, 보다 유치하고 어리석은 인물들을 그려나갈 것이다. 대신 마음은 점점 순수해지고 싶다. 어른이 된 작가이기 때문에 성숙한 눈으로 그걸 그릴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작가의 역할일 것이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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