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고전 읽기의 진수
창의적 고전 읽기의 진수
  • 북데일리
  • 승인 2007.12.0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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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영산대 김용석 교수는 철학과 대중문화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중철학자이다. 주로 한겨레신문에 주옥같은 글들을 선보이고 있고 얼마 전까지 방송 진행도 했었다.

학계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철학자라면 김용옥, 탁석산, 오늘 소개할 김용석 교수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은 김용옥이나 탁석산보다는 김용석이다. 통찰력, 글의 재미, 사유의 깊이, 글의 품격 면에서 김 교수가 이들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김용옥 교수는 우석훈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넘어오지 못한 듯하다. 김용옥 교수의 화법은 80년대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족집게 학력고사 강사 스타일이다. “이것 한방이면 서양 철학 무너져.” 명쾌하고 읽는 이에게 확신을 주지만 다각도로 생각의 여지를 주는 그런 깊이는 부족하다.

그에 비해 김용석 교수의 글은 사고의 촉매제로서 제 기능을 한다. 읽는 이가 스스로 사유하게끔 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식이다. 일단 키워드를 던져준다. 이어 자신이 직접 사유의 몸짓을 보여준 뒤 독자 스스로에게도 자연스럽게 날개 짓을 권한다. 일종의 철학 체험 학습으로서 내가 감상한 텍스트를 갖고 생각해 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문제도 만들어 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찾아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요즘 뜨고 있는 자기주도형학습과도 잘 어울린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통합 논술의 탄생에도 그는 크게 기여를 했다. “학문의 칸막이를 없애자,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 등의 이야기는 김용석 교수가 근 10 년 전부터 학계에 공식적으로 제기했던 주장들인데 대학보다 고등학교에서 먼저 도입된 것이다.

그의 글은 논술 시험 제시문으로도 자주 출제되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새 책은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하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부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대표적인 55권의 고전에 대한 분석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과서가 중요해도 고전 없는 논술은 앙꼬 없는 찐빵 아니겠는가? 앞서 그는 통합적 사고의 선구자라고 했는데 그의 분석은 텍스트와 텍스트 바깥,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 영상 언어와 문자 언어의 넘나듦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통합적이다.

통합적일 뿐만 아니라 참신하기도 하다. 상위권 대학들은 논술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창의성이라고 하지 않는가? 길게는 2500년, 짧게는 50년 전에 쓰인 고전들을 갖고 그는 정말 신선하고 예리한 감각으로 고전을 풀어 설명해 준다. 그의 글이 잘 읽히면서도 읽고 나면 머리에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이유는 연결 능력, 이른바 영역전이형 사고 때문이다.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남들은 ‘미운 오리 새끼’에서 정체성이란 흔해 빠진 키워드를 읽어낼 때 그는 오리가 만난 주변의 존재보로부터 닫힌 사회의 기만과 가식을 읽어낸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점에서 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단다.

둘 다 현실을 한 가지 관점에서만 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는 현실과 이상,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을 마음껏 갖고 노는 작가의 지적 유희를 톺아낸다.

그 앞의 ‘햄릿’에서는 죽느냐 사느냐로 고민하는 햄릿의 모습을 통해 이분법에 사로잡인 서양 근대의 시대정신을 읽는다. 프랑켄슈타인에서 갑자기 그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인용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피조물을 그것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을 지어주고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면 좀 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용석의 철학정원에는 도서관만 있지 않다. 영화관도 있다. 그의 글은 깊이가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편인데 그 이유는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와 대중문화를 갖고 철학적 사유를 펼치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철학도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는다.

이번 책 <철학 정원 -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한겨레출판. 2007)는 채플린과 베르그송의 조합이다. 그는 채플린의 숨은 걸작 ‘서커스’와 “웃음은 개인의 비사회적 태도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징벌”이라는 베르그송의 말을 연결시켜 웃음의 사회적 골탕 먹이기 기능에 주목한다. 채플린은 베르그송의 이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외된 자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그를 비웃는 사회의 냉혹함을 역으로 고발하고 있단다.

고전을 흔히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샘을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은, 고전 그 자체가 아니라 고전을 새로이 읽는 세대마다 다른 물 긷는 방식과 두레박의 크기”라고 주장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길어 올리는 물의 양과 질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퍼 올린 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등학생이라면 당연히 쓰기로 연결되어야 한다. 아니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읽기는 쓰기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쓰기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자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내 경험도 그렇다. 읽기에서 필이 꽂혀서 그것이 쓰기로 외화될 때 글쓰기 자체가 재미있고 즐거워지며 글의 완성도도 덩달아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논제와 몇 가지 자료 툭 던져 주고 내 의도 알아내서 쓰라는 우리나라 논술 시험은 정말 재미없는 글쓰기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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