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변신` 쉽고 재미있는 버전
`카프카의 변신` 쉽고 재미있는 버전
  • 북데일리
  • 승인 2007.11.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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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샘슨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깜짝 놀랐어요. 자기 몸이 커다란 딱정벌레로 변해 있었으니까요."

[북데일리] 어쩐지 낯익은 이야기인가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네요. 이제 생각났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2005. 문학동네)이었군요.

어느 날 일어나보니 갑충으로 변해버린 한 남자. 가장이었던 그의 변신은 가족에게 충격 그 자체입니다. 처음에 닥쳐온 것은 혼돈. 그 후 가족들은 그레고리를 말 그대로 벌레 취급합니다. 결국 가족들의 냉대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가엾은 한 마리의 벌레. 하녀는 벌레를 치워버리고 가족들은 축배를 듭니다. 참으로 가슴 서늘한 내용이죠.

헌데 로렌스 데이비드의 이름으로 또 다른 <변신>(2007. 보림)이 등장합니다. 20세기 사회에 대한 냉소를 날린 이 문제작이 동화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책의 첫 장에는 당당하게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읽고 생각을 얻음`이라 적혀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요?

카프카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벌레가 되는 건 그레고리입니다. 다만 그는 청년가장이 아닌 초등학생입니다. 까맣고 큼직한 딱정벌레 눈이 두 개. 기다란 더듬이도 두 개 있습니다. 아빠가 아래층에서 부르시는데 큰일입니다. 이를 어쩌죠?

그레고리는 팔을 넣을 구멍이 두 개 밖에 없는 셔츠를 보고 난감해합니다. 별 수 없이 두 개의 구멍을 더 냅니다. 아니, 팔이 아니라 다리인가?

하지만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은 가족들의 반응. 아무도 그레고리가 벌레로 바뀐 걸 알아채지 못합니다. 자신이 딱정벌레가 되었음을 호소하는 그레고리의 이야기를 짓궂은 농담처럼 흘려듣는 가족들.

"어저께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더니!"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여전히 그레고리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벌레임을 알아보는 사람을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만이 끊임없이 벌레임을 자각하며 진짜 가족이 있을지도 모르는 벌레의 행렬을 밟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죠. 헌데 스쿨버스에 오르자 생각지도 않게 친구 마이클이 그의 변화를 알아챕니다.

"왜 네가 그레고리의 가방을 메고 있는 거야? 내 친구는 어디 갔어?"

그레고리의 어처구니없는 변신에 당황스러워하는 마이클.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레고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봅니다. 하지만 뭐. 때로는 벌레가 편하기도 합니다. 축구할 때 공을 머리 위로 차올린 뒤 더듬이를 휘두르면 그만이거든요. 물론 마이클이 반칙이라고 투덜대긴 하지만요.

하지만 역시 벌레라는 건 우울한 존재입니다. 특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딱정벌레를 발견하는 순간엔 말이죠.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레고리의 변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오직 마이클 뿐이라는 겁니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도, 식당 아주머니도, 선생님도, 다른 친구들도요. 하긴 가족들도 모르는데 누가 알겠어요.

하교 후 집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의 고민을 알아주는 이는 없습니다. 그레고리는 속이 상해 울고 싶습니다. 하지만 울음을 꾹 참고 벽을 기어올랐죠. 저녁식사를 알리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릴 때 까지. 꼼짝도 않고 천장에 붙어있었습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네요. 방안에 들어선 아빠. 아들을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내 알아채죠. 천장에 붙어있는 딱정벌레 한 마리가 말을 걸어왔거든요. 드디어 가족들 모두 그의 변신을 알아챕니다.

모두들 당황하지만 곧 그레고리를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얼른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따뜻한 말도 건네고요.

"네가 어떻게 변해도 우리는 늘 너를 사랑한단다."

"사람이건 벌레건 말이야."

가족의 사랑을 확인한 덕분일까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레고리는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틀림없이 모두들 그의 두 번째 변신에 기뻐하겠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로렌스 데이비드의 <변신>.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다는 설정. 그리고 인간의 소외감을 다뤘다는 것입니다. 반면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를 받아들이는 가족의 자세. 거기에 따른 주인공의 엇갈리는 운명이 두 작품에 다른 맛을 부여합니다.

그레고리의 변신을 처음 알아본 건 가족도 형제도 아닌 절친한 친구 마이클입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관심사를 공유한 단짝 친구니까요. 추측해 보건데 평소에 가족들이 좀 더 애정을 쏟았다면 분명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를 단박에 알아봤을 겁니다. 사실 벌레의 형상은 그레고리의 외모가 아닌 안으로 곯아가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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