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힐러리 "난 보통 여자와 달라"
[성공스토리] 힐러리 "난 보통 여자와 달라"
  • 북데일리
  • 승인 2007.11.0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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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빌 클린턴이 힐러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숙명론자가 아니었다. 힐러리는 “누구나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힐러리가 빌과 결혼을 결심하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세 가지 망설임 때문이었다.

첫째, 빌의 여성 편력 문제

둘째, 아칸소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셋째, 빌의 열정을 추구하려는 의지력에 대한 의심

힐러리는 연애 할 때부터 드러난 빌의 바람기로 인해 그들의 결혼생활이 마냥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결국 그녀는 워싱턴에서 이룰 ‘거대한 정치적 미래’에 대한 꿈을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빌을 따라 아칸소로 간다는 것은 워싱턴이나 뉴욕에서의 일류 직장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결심했다. 그녀는 빌의 협력자이자 관리자 그리고 고문 역할을 맡았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이는 <힐러리의 삶>(현문미디어. 2007)의 저자 칼 번스타인이 내린 평이다. ‘퓰리쳐 상’ 수상기자이기도 한 칼 번스타인은 치밀한 조사기법으로 힐러리에 대한 뛰어난 평전을 완성했다. 그녀의 고집과 신념이 명확해 지는 대목은 여럿. 그 중에서도 결혼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결혼식 준비에도 관심 없던 여자

힐러리는 결혼식 준비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정원에서 피로연을 준비해주겠다는 지인의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나머지 준비 모두를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지인에 따르면 당시 힐러리는 결혼식 자체보다는 그 이후에 맞이할 인생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힐러리는 결혼식이나 피로연을 위한 초대장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녀가 한 것이라곤 백화점 접시가게에서 현대적 식기류를 조금 산 것 뿐이었다. 드레스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힐러리가 드레스를 맞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랬다. 결국, 힐러리는 결혼식 전날에서야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드레스를 맞췄다.

결혼 당일, 피로연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일과 옥스퍼드, 웰즐리, 조지타운, 파크리지, 핫스프링스에서 온 200명 이상의 하객들이 피로연장을 가득 메웠다. 피로연장은 선거전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힐러리의 폭탄선언이 이어졌다.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겠다는 결심

힐러리는 피로연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힐러리 로댐’으로 남을 것이라고 선언해 사람들을 놀래켰다. 시어머니 버지니아는 힐러리의 깜짝 선언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폴 프레이는 힐러리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화를 냈다.

힐러리에게 있어서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이름은 언제나 자신이 ‘정치인의 희생적인 아내’가 아닌 ‘고유의 권리를 가진 한 사람’임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녀 주변 사람들은 물론 공직의 여성과 독립적인 단체 모두 그녀를 비난의 지표로 삼았다. 초기의 여성운동이 그런 시도를 하기도 전에 이미 힐러리가 처녀 적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힐러리의 완강한 고집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힐러리는 ‘누구의 아내’가 아닌 ‘힐러리 로댐’ 그 자체로 살길 원했다.

결혼 후 힐러리는 아칸소 최대의 법률 회사 ‘로즈’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우려했다.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로즈의 주요 의뢰인은 전부 남자였다. 한 변호사는 “그러다가 임신이라고 하면 어쩔꺼냐”고 묻기도 했다. 로즈에서 힐러리는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른 파트너 변호사나 고객들은 힐러리를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스스로 공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직장동료였던 허벨은 당시의 힐러리를 이렇게 기억한다.

“아침 회의시간에도 그녀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항상 당당했고, 누구에게도 위협당하는 법이 없었어요”

이런 점 때문에 힐러리를 로즈에서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성과는 탁월했다. 다양한 재판에서 열정을 보였고, 변호사 연봉은 해마다 올라갔으며 빌이 대통령이 되기 직전에는 이미 남편의 수입을 훌쩍 넘어 있었다.

평전의 저자 칼 번스타인은 힐러리를 이렇게 평한다.

“아내로서, 변호사로서, 그리고 클린턴의 정치생명을 이어준 독특한 위치의 정치 전략가로서의 역할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소화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로 비추어 볼 때 힐러리의 정치 행보는 기대할 만하다. 남편의 집권이 끝난 후에도, 왕성한 정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힐러리. 그녀의 열정적 삶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고현욱 기자 my9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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