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침묵` 예술로 씻어낸 전쟁의 상처
`바다의 침묵` 예술로 씻어낸 전쟁의 상처
  • 북데일리
  • 승인 2005.10.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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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장정일이 ‘독서일기’에서 극찬했던 프랑스 작가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범우사. 2005)이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저자 베르코르(1902~1991. 본명은 장 마르셀 브륄레르)는 이 소설을 쓰기 전 단 한줄의 글도 써보지 않은 화가였다. 화가 베르코르에게 소설가라는 가시면류관을 씌워준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2차대전 당시 3년이상 독일군에게 점령 당했던 조국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투신하게 된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폭력 가운데서도 소멸되지 않는 인간 존엄성을 추구했다.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동명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이 소설은 인물 설정관계에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3)를 떠오르게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영화 속 주인공인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나치에 의해 가족을 잃게 되고 죽음의 위기에 몰려 폐허가 된 건물에 갇히게 된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스필만과 우연히 맞닥뜨린 한 독일군 장교는 그의 목숨 대신 그의 연주를 듣기 원한다.

영화처럼 소설 <바다의 침묵>은 노인과 질녀가 사는 민가에 갑자기 나타난 독일군 장교와의 만남을 그린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독일군 장교다.

“나는 언제나 프랑스를 사랑했습니다. 항상 좋아했어요. 전번 전쟁 때 나는 아직 어린애였습니다. 그때 생각하던 것은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프랑스를 좋아했습니다. 단지 먼데서 생각했던 거지요. 마치 연극 `먼 나라의 공주`에서처럼.”

독일군 장교는 노인과 그의 질녀에게 프랑스와 프랑스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작은 목소리로 꺼내놓는다.

작가 베르코르는 이 작품이 전쟁의 폭력과 살육을 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쟁에 가담하게 된 인간과 예술을 통해 뜨거운 휴머니즘을 역설하고 있다.

"영국 사람이라면 곧 셰익스피어를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사람은 단테, 스페인사람은 세르반테스, 그리고 우리나라사람들은 금방 괴테를 생각하지요. 그 다음엔 생각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작가를 말하라면 금방 누가 떠오르겠습니까? 몰리에르? 라신? 위고? 볼테르? 라블래? 너무 많습니다. 극장 입구의 군중들 같습니다. 그러나 음악으로 말하자면 그건 우리나라지요, 바흐, 헨델, 베토벤, 바그너, 모차르트...누구를 첫째로 꼽을까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 전쟁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서로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결합하게 될 것입니다.”

소설 속 가장 감동적인 독일군 장교의 이 대사는 베르코르 작품의 높은 문학적 가치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국의 늙은 노인과 어린 소녀 앞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는 장교의 심정은 읽는 이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다.

책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베르코르 문학만의 독특한 압축미를 느끼게 하지만 <바다의 침묵>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뜨거운 인간애로 가득 찬 그의 작품 때문에 베르코르는 저항 작가이자 휴머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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