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김진수기자]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계절은 저마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꽃피운다. 그중 어떤 모습이 가장 인상적일까. 일본 수필가가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아닐지 싶다. 일본 수필가 세이쇼나곤이 지은 ‘사계절의 멋’이란 글이다.
봄은 동틀 무렵. 산 능선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그 위로 보랏빛 구름이 가늘게 떠 있는 풍경이 멋있다.
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이 근사하다. 반딧불이가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밤도 좋다.
가을은 해 질 녘. 석양이 비추고 산봉우리가 가깝게 보일 때 까마귀가 둥지를 향해 세 마리나 네 마리, 아니면 두 마리씩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러기가 줄지어 저 멀리로 날아가는 광경은 한층 더 정취 있다. 해가 진 후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기분 좋다.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 재로 변해 버려 좋지 않다. (본문 중)
이 글은 일본 수필 문학의 효시인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완역한 <베갯머리 서책>(지식을만드는지식. 2015)에 등장한다. 이번 겨울엔 새벽녘 눈 내리는 모습을 꼭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