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열차는 도시의 한 단편.. 잊고 있던 추억을 되살려
[책속의 명문장] 열차는 도시의 한 단편.. 잊고 있던 추억을 되살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16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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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장나리아 ․ 이은경 옮김 / 예담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살다보면 잊고 있던 지난날의 특별한 기억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나 사물,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책을 통해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예담. 2010)은 34명의 사람들이 사물에 얽힌 기억을 들려주는 수필집이다. MIT의 건축 및 미디어아트 교수인 윌리엄 J. 미첼이 쓴 ‘멜버른 기차’가 우리를 먼 추억 속으로 데려간다.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기관차는 내게 더 넓은 세상을 뜻하는 움직이는 상징이었다. 당시 해변을 따라 길게 뻗어나가는 도시들을 ‘거대한 연기 the big smoke라고 불렀는데, 증기기관차는 그런 도시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완벽한 반구형의 청명한 하늘 위로 거대한 흰 구름을 폭폭 뿜으며 열차가 지나가면, 연기는 일자 수평선을 가로지르며 길게 꼬리를 남겼고, 가끔 흙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토해낸 먼지가 연기가 되어 함께 어우러졌다.

따듯한 조명이 켜진 객실은 도회적 세련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열차는 이 세상 반대편 끝에 존재하는 도시라는 신비한 삶 한쪽이 떨어져 나온, 말하자면 도시의 단편이었다. 객차에서 내리는 승객들은 옷차림부터 우리 동네 사람들과 달랐고, 대화의 내용도 낯설었다. (중략)

그 작은 동네를 떠난 지도 어느새 오십 년이 넘었다. 고향을 떠난 지 십 년 뒤에 멜버른 대학교에 다닐 기회가 생기면서 나는 영원히 시골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내 삶의 무대는 세계 곳곳의 대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나가는 급행열차를 보면 저 반대편의 세상이 떠오른다. 열차는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린다. 길게 늘어선 향기로운 유향나무, 공을 주우러 기어 올라갔다가 너무 뜨거워 손도 대지 못했던 녹슨 철제 지붕, 불현 듯 코끝에 다가오는 흙먼지 속의 빗방울 냄새, 그리고 작고 호기심 많은 한 아이가 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고요한 시골길을, 놀랍도록 젊고 아름다웠던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한 아이가.” (p. 212)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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