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얼음 때문에 과부 속출한 사연, 석빙고가 만든 ‘빙고청상(氷庫靑孀)’
[책속의 지식] 얼음 때문에 과부 속출한 사연, 석빙고가 만든 ‘빙고청상(氷庫靑孀)’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0.19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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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 과학>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빙고청상(氷庫靑孀)이라는 말이 있다. 채빙(採氷,얼음을 떠냄)노역을 피해 도망한 남편을 기다리는 어린 부인을 뜻한다.

채빙 노역자는 일은 고됐다. 얼음을 저장할 때는 얼음끼리 서로 붙지 않도록 쌀겨 솔잎 등을 1~2cm 정도 쌓고 얼음을 층층이 쌓았다. 얼음은 섣달 겨울에 가로 70~80cm, 세로1m, 높이 60cm 정도의 크기로 잘라야 했다.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해야만 했다. 이런 고되고 번거로운 일로 겨울만 되면 한강변의 민가들이 채빙 노역을 피해 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빙고청상이란 말은 이때부터 유래됐다. 이와 관련한 기록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지증왕 6년(505년)에 빙고전이라는 관청을 두어 얼음을 저장해 쓰게 했다는 기록도 있고, 조선 시대에는 생선 보관용으로 민간에서 설치한 사설 얼음 창고도 여럿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석빙고도 지난 겨울의 얼음을 녹지 않게 보관했다가 한여름에 쓸 수 있게 한 인공의 얼음골이다.

문제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채빙을 하는 고된 일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먹기에는 시원하지만 그 속에는 백성들의 땀과 고통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얼음과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사람의 병을 다루는 자가 신체의 내부를 모르고서 생명을 지킬 수 없기에 병든 몸이나마 네게 주노니 네 정진의 계기로 삼으라.”

<소설 동의보감>의 한 대목이다. 인체 해부를 엄금했던 조선 시대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고 제자에게 인체 해부의 기회를 주고자 했다. 허준은 이를 계기로 조선 최고의 명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스승은 이 같은 일을 위해 제자를 특정 지역으로 불러들였다. 바로 경남 밀양의 얼음골이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차가워 해부를 위해 시신을 보존할 수 있는 안정맞춤의 장소였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서 배우고 이를 활용해 한여름에도 얼음을 사용하는 지혜가 있었다.

<물구나무 과학>(문학과지성사.2015)는 우리 문화의 풍속과 관련된 서른일곱 가지의 과학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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