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난 변호사' 리뷰, '이선균의 정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 '성난 변호사' 리뷰, '이선균의 정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 김동민 기자
  • 승인 2015.10.15 0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선균이 '성난 변호사'의 변호성이 된 과정

영화 '베테랑'의 태오(유아인)는 ‘문제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난 변호사'의 주인공 호성(이선균)은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 라고 말한다. 전자가 태오의 순수한 악마성을 표현하는 명제였다면, 호성이 웅변하는 후자의 명제는 애초부터 모순이다. 우리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많은 경우 승리자들은 정의롭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안다.

(아래 내용에는 끝까지 간다 및 성난 변호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성난 변호사는 배우 이선균을 원톱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도 그의 캐릭터 개인에게 가장 크게 의존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이선균의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조차 건수(이선균)와 더불어 창민(조진웅)이 함께 빛났다. 하지만 성난 변호사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나, 환상적인 케미를 일으키는 파트너를 그리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 ‘변호성이 어떤 인물인가’의 문제는 곧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와 전적으로 맞닿게 된다.

영웅이 ‘정의로운 승리자’를 뜻한다고 하면, 배우 이선균의 이미지는 영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선균은 드라마 '파스타'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재수없는 버럭 셰프를, '미스코리아'에서는 자신이 진 빚을 갚으려 옛 연인을 꼬드겨 미스코리아에 출전시키는 못난 남자를 연기했다.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의 그는 심지어 자신이 차로 친 사망자를 죽은 어머니의 관 속에 유기하려는 ‘반인륜적인’ 형사였다. 말하자면 이선균의 캐릭터들은 비겁하거나 찌질하거나 겁쟁이라거나,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불완전성’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선균들'이 밉지 않았던 건, 불완전성을 조금씩 극복하며 성장해가는 그들의 모습이 현실의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선균이 ‘정의의 사도’가 되기를 원치 않을 뿐더러, 그것이 어울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성난 변호사는 호성에게 굳이 정의를 주입하려 한다. 물론 끝까지 간다의 건수와 마찬가지로, 초반부의 호성은 유능하지만 비겁하다. 한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서 정의와 무관하게 돈 되는 사건을 골라 맡고, 법을 교묘히 활용해 자신의 의뢰인을 승소시킨다. 하지만 이런 그가 돌연 정의의 편에 서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럽다. 의뢰인 정환이 갑작스레 자신의 살인을 자백한 시점에 호성은 ‘성난 변호사’가 되고, 이내 정환이 일하는 제약회사 회장(장현성)을 의심하면서 ‘정의로운 변호사’가 된다. 끝까지 간다에서 뺑소니범이었다가 악당과 맞붙으면서 본의 아니게 정의를 실현한 건수에 비하면 호성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엔 다소 급격하다.

영화 후반부, 호성이 회장 앞에 굴복해 다시금 속물 근성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며 짠 하고 돌아서는 식의 거듭된 반전이 미리 쉬이 읽혀버리는 것도 그래서다. 정환의 변호를 포기하지 않는 호성의 태도는 그가 정의의 편에 섰다는 것을 관객에게 시사하는 전환점이 되고, 이후 호성이라는 인물이 지닌 복합성은 단번에 사라진다. 선과 악의 경계선 상에서 위태롭게 서 있던 호성이 정의의 편에 자리한 순간부터, 불의를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더이상 신빙성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암살'과 베테랑의 흥행에 있어 권선징악적 메시지가 어느 정도 주효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리하는 정의’를 그리는 것이 영화의 완성도를 담보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암살의 전지현이나 베테랑의 황정민의 모습을 이선균을 통해서만큼은 보고 싶지 않다. 선글라스에 백팩, 스니커즈를 장착한 채 법정에 서고, 할부도 끝나지 않은 차에 난 스크래치를 보곤 짜쯩을 내는 배우 이선균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또 한번, 세상 어디에도 없던 호성을 만들어 낸 이선균. 그를 대하며 느낀 신선함이 정의의 이름 하에 짓밟혀져 버린 사실은 못내 아쉽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