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과 랴오동지에](하) 변질된 ‘메이데이’ 추락한 ‘중국 노동절’
[중국인과 랴오동지에](하) 변질된 ‘메이데이’ 추락한 ‘중국 노동절’
  • 뉴미디어팀
  • 승인 2015.05.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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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노동절 사라지고 흥청망청 노동절
▲ 중국인들이 한국 명동을 점령했다. 노동절을 맞아 많은 중국 관광객이 명동을 방문해 쇼핑을 즐기고 있다.

언제부턴가 봄바람이 불어오면 동북아시아 3국은 서로 ‘다른 이유’로 설레는 두 부류로 나뉜다. 5월 초 노동절 연휴 동안 쉴 생각에 들뜬 이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노동절에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단단히 한 몫을 잡으려는 이들이 바로 그것이다.

‘설레는 마음’은 똑같지만 노동절을 지내는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이 둘은 상호보완 관계로 존재한다. 덕분에 노동절에는 당연히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어떤 이는 쉬고 어떤 이는 쉬지 말아야 하는지 그 경계가 날이 날수록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이 경계가 뚜렷해지는 데는 최근 동북아 지역 ‘큰 손’으로 떠오른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 한 몫을 거들고 있다.

노동절 연휴가 가까워지면 매스컴에는 요우커들을 겨냥한 국내 유통업체들의 화려한 노동절 특수 전략으로 도배가 된다. 이러한 업체들의 노고에 요우커들은 충실하게 반응해준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연휴 동안 명동과 동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무서운 속도로 화장품과 의류 등을 쓸어 담는다.

쇼핑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요우커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노동절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5월 1일은 ‘노동절’인지 아니면 이제 ‘소비의 날’로서 굳어진 그저 ‘5월 1일’인지 말이다.

중국인들의 적극적인 소비 행위는 중국정부가 지정한 노동절의 의의와 잘 결합돼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권리는 찾자는 취지로 시작된 노동절이 중국에서는 ‘소비’라는 단어를 매개로 오히려 노동자들이 양분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초기 중국 노동절=미국의 메이데이

전 세계 노동절의 유래는 1989년 파리에서 열린 ‘제 2인터내셔널 설립 대회’에서 5월 1일을 ‘국제 노동절’로 정한 것으로 공식화됐다. 그러나 노동절의 시발점은 이에 앞서 따로 있다. 지난 1986년 5월 1일 미국의 35만명 노동자가 ‘8시간 노동시간 쟁취’를 위해 시위를 벌인 것이 그 유래가 됐다.

서양에서 일명 ‘메이데이(MayDay)’라고 불리는 5월 1일은 착취에 반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한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휴식을 가지는 날이다.

중국의 노동절도 메이데이와 국제 노동절의 정신에 근거해 출발했다. 중국의 노동절 기념행사는 19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부 혁명 인사들은 상하이와 항저우를 중심으로 ‘5월 1일’을 기념하는 전단지를 일반인들에게 배포했다.

그 후 1920년 5월 1일 ‘신청년’이라는 잡지에 실린 ‘노동절기념호’에는 서양의 메이데이와 관련된 글과 중국 내 노동환경을 조사한 내용이 함께 수록됐다.

이날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 공업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가두시위와 집회를 벌였고 지식인들은 노동절의 내력과 미국, 프랑스 등의 노동절 기념행사 등을 소개하며 중국 노동자들도 5월 1일을 각성의 날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지식인들은 자본가들이 노동을 착취하고 이윤을 얻는 과정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고 노동자들은 ‘8시간 근무,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이라는 ‘삼팔제’를 요구하며 노동절을 기념했다. 베이징대 학생들도 ‘5·1절 베이징 노동자선언’ 등의 전단지를 돌리며 노동자 권리 찾기에 나섰다. 이것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노동절이다.

화교인 刘小林(유샤오린·가명)씨는 중국에서 노동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잘 알고 있다. 刘씨는 “중국에서 노동절은 1920년을 기점으로 시작됐다고 알고 있다”며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자본주의와 미국의 메이데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刘씨는 “당시 중국에서 노동절은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미국 메이데이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초기 중국 노동절의 성격은 현재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 刘씨의 설명이다. 이러한 메이데이의 정신이 깃든 노동절이 아이러니하게도 ‘황금연휴’라는 단어와 접목되면서 성격이 조금씩 변하게 된다.

◆ ‘소비 활성화’를 위해 새롭게 제정된 노동절

중국에서 노동절이 법정휴일로 지정된 것은 1949년 신 중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 이뤄졌다. 당시 중국정부는 5월 1일 단 하루만을 국가 휴일로 지정했다. 노동절이 법정휴일로 지정된 초기에도 대다수 중국인은 다양한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등 하루를 뜻있게 보냈다. 사회 공헌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노동자에게는 상도 수여됐다.

이런 노동절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동아시아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가 지나고 난 다음이다. 당시 중국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상처를 입었다.

이에 묘안을 고민하던 중국 정부는 내수 활성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소비 진작을 위한 수많은 정책 중 하나가 바로 노동절을 포함한 7일간의 긴 연휴, 장기연휴제도다. 2000년부터 시작된 7일간의 노동절 연휴가 현재 중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황금연휴의 전신이다.

이후 2008년부터는 7일간의 장기연휴는 춘절과 국경절만 시행하게 됐고 노동절 연휴는 3일로 단축돼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이 연휴 기간 동안 중국 본토는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중국과 가까운 홍콩과 마카오, 일본, 한국 등지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지난 달 현지 한 언론이 중국 네티즌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번 노동절 연휴 동안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중국 네티즌은 68%였고 이중 46%는 이미 여행계획을 확정지었다.

노동절 연휴 동안 홍콩에 다녀온 직장인 김모(26·여)씨는 “평소 자주 들리는 명동에만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줄 알았더니 홍콩에도 요우커들로 넘쳐나더라”면서 “특히 면세점과 쇼핑몰에서 중국인들이 너도나도 지갑을 열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노동절 기간 동안 본점의 중국인 매출액(은련카드 기준)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5%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동안 중국인의 매출 구성비는 지난해 연간 기준(17.2%)보다 1% 포인트 높은 18.2%를 기록했다.

이처럼 요우커들은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연휴기간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한국 등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소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며 유통·관광업체들에게 웃음을 안겨다 주고 있다.

刘씨는 “현재 중국인들에게 노동절이란 ‘휴일’ 혹은 ‘쇼핑하는 날’로 여겨지는 것 같다”며 “나도 여행을 즐기는 편인데 가끔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화장품 등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5월 1일에 베이징을 중심으로 시위가 이뤄지긴 한다”며 “현 정부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 정도의 규모로 시위를 열지만 예전처럼 사회의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노동자의 유혈로 시작된 메이데이가 중국에서는 조금 다른 성격으로 변했다.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중국에서 오히려 노동절이 소비자의 날로 증진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중국정부에 의해 철저한 자본주의의 시각으로 재정비된 노동절은 요우커들의 왕성한 소비력으로 더욱 굳건해 지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진정 노동절을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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