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담배와 커피는 어른의 젖병?
[책속의 명문장] 담배와 커피는 어른의 젖병?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5.04.17 0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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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중에서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건물 화장실이나 뒷골목에서 눈치 보며 피우던 담배. '금연구역'이 늘면서 이젠 건물 밖에서 피운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하얀 연기를 내뿜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혼자서도 당당히 피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상가 건물 한 집 건너 하나가 커피집이 들어설 정도다. 건강을 위해 담배와 커피의 중독성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우리 생활 깊숙히 파고 들어왔다. 커피와 담배는 기호품일까. 피해야할 식품일까. 담배와 커피를 권장하는(?) 병원이 있다. 바로 정신과 병원이다.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은행나무.2009)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운명에 맞서 새로운 인생을 향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두 남자의 치열한 분투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현장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살렸다.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문체, 곳곳에 배치된 블랙 유머가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담배와 커피를 끊으라고 권장하는데 소설 속 병원에서는 담배와 커피를 제공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담배와 커피는 향정신 명약이 주는 부작용의 고통을 완화시킨다. 원리는 모른다.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만 안다. 병원 측이 흡연실을 만들고 담배와 커피를 제공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폭력과 격리, 약제가 통제수단이라면 두 기호품은 젖병이다. 물리면 바로 조용해진다. 물론 젖병 값은 법적 보호자가 댄다.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돈이 없거나, 보호자가 돈낼 의사가 없거나, 보호자가 현재의 고통보다 미래의 폐암을 중대사로 여긴다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끊든, 빼앗든, 훔치든, 구걸하든, 노역으로 돈을 벌든. -85쪽

'커피와 담배'가 병원에서는 의약품(?)으로도 쓰이나 보다. 환자들에게 '물리면 바로 조용해진다'라는 표현이 재미있으면서도 날카롭다. 물리적인 폭력보다 또다른 의약품(?)을 쓰는 병원의 폭력을 꼬집은 아닐까. 젖병을 물리면 바로 순해지는 소설 속 환자들의 모습이 안타깝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몸에 맞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하는 '커피와 담배'라면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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