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 '김혜자는 신발 끄는 소리도 달라'
[책속 명문장] '김혜자는 신발 끄는 소리도 달라'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4.12.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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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서

[북데일리]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푸르메. 2010)은 삶의 절박함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이다. 책에는 국민엄마로 불리는 '김혜자' 씨에 관한 글이 나온다.

오래전에 나는 어느 잡지에서 <전원일기>에 출연하는 김혜자 씨의 연기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글의 주된 내용은 김혜자 연기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밤늦게 외출했던 회장님(최불암)이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자 부인인 김혜자가 신발을 끌고 마당을 걸어나가는 장면이었다. 그때 김혜자의 ‘신발 끄는 소리’에서 바로 그녀의 진가를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소리에서 남편을 기다기는 동안의 초조함과 불안, 반가움과 안도감을 읽을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건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사소한(?) 대목일 뿐이니까. 그런데 그게 정말 사소한 대목일까?

언 땅에 묻어둔 김장김치나 된장 항아리 속에 박아둔 무 장아찌처럼 오래 묵은 것일수록 깊은 맛이 나게 마련이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 가면서 그렇듯 사소한 몸짓에서부터 깊은 맛이 우러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어느 일요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서. -33쪽

윤대녕의 산문집 <모든 극적인 순간들>(푸르메.2010)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글은 며칠 전 JTBC TV ‘손석희의 뉴스룸’에서 탤런트 김혜자씨의 인터뷰 때 손석희가 읽어준 수필이다. 김혜자는 이 글을 듣고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봐주시다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손석희가 “이건 계산된 연기법입니까?”라고 묻자 김혜자는 “아니요. 저는 계산 같은 거 할 줄 몰라요. 저는 연기를 할 때 그냥 그 여자가 되버리거든요.”

올해 김혜자의 나이가 벌써 70이 넘었다.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김혜자 씨처럼 곱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김혜자의 ‘신발 끄는 소리’처럼 사람들에게 계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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