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물, 칭기스 칸
천년의 인물, 칭기스 칸
  • 신 현철
  • 승인 2014.09.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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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워싱턴 포스트는 20세기를 마감하는 1995년 송년 특집호에서 칭기스 칸을 지난 1천년간의 인류역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선정, '천년의 인물'이란 칭호를 부여했다. 신문은 칭기스 칸이 선정된 이유에 대해 사람과 과학기술의 이동을 통해 이 지구를 좁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사계절, 2005)는 부족민 연구가로 알려진 잭 웨더포드의 책이다. 그는 1998년 서구 학자로는 최초로 칭기스 칸의 고향 부르칸 칼둔을 방문했다. 그는 <몽골비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칭기스 칸의 이동 경로를 추측해 고고학 탐사를 진행했다.

칭기스 칸의 성장 기반이 된 곳이 초원이 아니라 숲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그의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초기 몽골족은 유목이 아니라 사냥이 생계의 중심이었고, 이후 칭기스 칸의 부족 운영과 전쟁 전술에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직접 발로 쓴 책을 통해 우리는 13세기 몽골의 역사를 모험하듯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는 호머의 <일리아드>와 비견된다고 찬사를 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칭기스 칸이 태어나서 몽골을 통일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2부는 몽골이 전쟁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 3부는 팍스 몽골리카의 시대를 통해 몽골의 문화가 서구 근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명했다.

몽골인은 과학기술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지도 않았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지도 않았고, 책이나 연극도 거의 쓰지 않았으며, 세상에 새로운 작물이나 영농기술을 내놓지도 않았다. 몽골의 장인은 직물을 짜지도 못하고, 금속을 주조하지도 못하고, 도기를 만들지도 못하고, 심지어 빵을 굽지도 못했다. 그들은 자기나 도기를 제작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고, 건물을 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군대는 여러 문화를 차례차례 정복하면서 이 모든 기술을 모아 이 문명에서 저 문명으로 전해주었다. - 20쪽

워싱턴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몽골 제국은 사람과 과학기술, 다시 말해 문명의 이동을 통해 최초로 세계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저자는 "쿠빌라이 칸 치세에는 몽골 제국이 '몽골 회사'로 바뀌었다"고 까지 표현했다. 제국을 운영하는 방식이 지금의 세계화된 성공한 다국적 기업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다른 무엇보다 이 부분이 칭기스 칸의 위대함이며 그의 성공 전략을 연구하고 배워야 할 이유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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