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자로 피우는 생각의 꽃
한글자로 피우는 생각의 꽃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4.08.3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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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의 <한글자>

[북데일리]"뒤, 옷, 산, 꽃, 연, 씨, 봄, 첫, 팔, 답, 것, A, 돈, 적, 일, 신, 섬, 뼈, 공, 방, 쿨, 잠, 벼, 삶, 겁, 헛, 꿈, 똥, 활, 칼, 쉿, 1, 뿔, 노, 콩, 돼, 앞, 헉, 반, 낫, 곳, 탑, 늘, 밭, 띠, 늪, 덫."

책 속의 목차중 ‘인생에 대한 예의’에 대해 등장하는 한 글자로 된 낱말들이다. 마치 암호를 적어 놓은 것 같다. 한 글자를 어떻게 긴 글로 풀어 냈을까, 책을 빨리 펼쳐 읽어보고 싶어진다.

<한 글자>(정철.허밍버드.2014)는 한 글자로 된 말에 대한 단상을 모은 책이다. 언제나 ‘사람’을 먼저 이야기해 온 베테랑 카피라이터 정철의 <한 글자>는 오로지 1음절로 이루어진 글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한 글자로 시작해 한 글자로 놀다가 한 글자로 끝나는 단어들 262가지를 담아냈다.

이 책은 빨리 읽겠다고 마음 먹고 읽기 시작하면 후루룩 국수 먹듯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한 글자에 알록달록한 생각과 따뜻한 마음과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부탁한다.

“5초에 읽을 수 있는 글을 5분에 읽어 주십시오. 하루에 손가락으로 꼽을만큼씩만 토막 내서 읽어 주십시오. 작가가 활자화하지 않고 행간에 넣어 둔 이야기를 당신이 꺼내서 읽어 주십시오.”-7쪽

한 글자로 된 글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랍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글자이다. 그 한 글자로 생각의 꽃을 피워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 놀랍다. 마음에 꽃이 피는 몇 개의 글자를 소개해본다.

옷. 옷이라는 글자 사람을 닮았다. 머리와 목, 두 팔에 다리까지. 그런데 가슴이 없다. 가슴이 없는 사람은 옷이다.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옷이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다.-14쪽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하다. 이미지가 그려진다. 옷이라는 사물에 사람의 감성을 입혔다. ‘가슴이 없는 사람은 옷이다’는 유쾌한 반전이다. 세심한 감성이 돋보인다. 사람들을 거리를 지나면서 무엇을 볼까? 명품백, 헤어스타일, 옷, 구두, 시계, 키, 얼굴, 각자 보는 부분이 다르다. 나도 사람이 아닌 옷으로 거리를 걸어 다니는 건 아닐까.

도. 사랑의 온도는 몇 도일까? 73‘C. 너와 나의 체온을 더한 뜨거운 온다. 화상 한 번 입지 않은 사랑은 물집 한 번 잡히지 않는 사랑은 그냥 36.5’C. 나만 있고 너는 없는. -135쪽

청춘의 온도는 항상 73‘C가 아닐까. 화상 한 번 입으면 물집 한 번 잡히면 영원히 식지 않는 온도일 것이다. 사랑은 난로처럼 따뜻하면서도 뜨겁다. 순간 방심하면 데이기 쉽다. 그렇다면 너와 나 우리가 엉켜있는 가족의 온도는 몇 도일까. 폭발하기 직전의 용암처럼 몇 백도는 될 것 같다. 가족은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우리도 있다.

금. 열아홉은 금이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나이다. 공부나 성적 따위가 그 빛을 가릴 수는 없다. -326쪽

재미난 글이다. 우리는 보통 ‘19금’을 ‘19세 이하는 금지‘ 라는 해석을 하는데 금처럼 빛나는 나이인 ‘19金’으로 본다. 똑같은 사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금지가 될 수 있고 반짝이는 금이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가끔 사람을 사귈 때 금을 그어놓고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금지대상이 아니라 반짝이는 금처럼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의 감성적인 글과 상상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일러트스는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마치 상상력 꽃밭에서 놀고 있는 느낌이다. 창의력이 필요할 때, 휴식이 필요할 때, 앞날이 캄캄할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심심할 때, 여행할 때, 외로울 때 읽어볼 것을 권한다. 꼭. <이수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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