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샤프펜슬 발명한 기업인 `영화 같은 삶`
[성공스토리] 샤프펜슬 발명한 기업인 `영화 같은 삶`
  • 북데일리
  • 승인 2007.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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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회사가 모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라. 어느 기업이든 우리가 로열티를 받고 특허 기술을 제공하면 좋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제품밖에 만들 수 없다면, 그건 우리 기술과 경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데일리] 세계 최대의 LCD 기업으로 우뚝 선 ‘샤프’의 창업자 하야카 도쿠지가 내세운 경영이념이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이처럼 자신만만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15년 샤프펜슬 발명, 1925년 일본 최초 라디오 개발, 1951년 일본 최초 TV 발명, 1962년 일본 최초 전자레인지 발표, 1966년 세계 최초 집적회로 기반의 탁상 전자계산기 발매... 모두 도쿠지가 쌓아온 화려한 이력들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미스터 퍼스트’(Mr. First)라고 붙여졌을까.

그는 “다른 회사에는 없는 최초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으로 개발에 몰두해왔다. 이 같은 신념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년이 다 되가는 지금까지도 ‘샤프의 유전자’라 불리고 있다. 운영방침 밑바탕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샤프는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 도쿠지는 초등학교를 1년 남짓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인생역전기는 <샤프를 창조한 사나이>(굿모닝북스. 200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은 출판기획, 편집 전문회사 ‘아웅’의 대표인 히라노 다카아키가 출간한 것. 도쿠지의 일대기가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도쿠지는 생가의 몰락으로 두 살도 안 돼 양자로 보내졌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성냥갑 붙이기 일을 하는 등 험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여덟 살에는 금속세공 공장에 견습직공으로 들어갔다.

공장 경영의 난항으로 모든 종업원이 그만 둔 뒤에도 혼자서 일을 하며 의지를 불태우던 도쿠지. 그런 노력 끝에 19세가 되던 해(1912년) ‘도쿠비죠’라는 조임식 혁대 버클을 발명하게 된다. 그리고 1915년, 마침내 샤프펜슬을 탄생시켰다.

샤프펜슬 사업이 순조롭게 풀려갈 무렵, 그는 간토 대지진으로 위기를 맞는다. 아내와 두 아들까지 잃는 말 못할 슬픔을 겪게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절망의 순간. 하지만 그는 다시 재기에 도전했다.

샤프펜슬의 특허권을 모두 양도하고, 오사카로 터전을 옮겨 시작한 새 사업은 라디오였다. 쉼 없는 연구개발로 1925년 일본라디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1951년에는 일본 최초의 TV를 만들어냈다. 1962년에는 일본 최초의 전자레인지를, 1966년에는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 기반의 탁상 전자계산기를 발매해 지금 쓰고 있는 소형 전자계산기 시대를 열었다. 세계 최대의 태양전지를 미가시마 등대에 설치해 태양에너지 시대를 앞당기기도 했다.

특히 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참가를 포기하고, 전시관 건립비용을 전부 반도체 연구에 투자한 일은 눈여겨볼만 하다. 이로써 샤프는 현재 세계 최대의 LCD 업체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CEO

도쿠지가 전설적인 CEO로 추앙받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세운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책에는 그가 지닌 인간적인 면모가 세밀히 묘사돼 있다.

처음 견습직공으로 들어갔던 사카다 공장의 주인을 평생 귀중히 모신 일, 어린 시절 자신을 보살펴준 앞을 보지 못하는 이웃 할머니의 은혜를 기려 일본 최초의 장애인 전용공장을 만들고 보육원을 설립한 일 등이 그렇다.

그의 따스한 성품이 직원들마저 감화시킨 일화도 있다.

경제 불황으로 기업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 도쿠지는 “정리해고 같은 건 못한다. 망해도 직원들과 생사를 같이 한다면 마음이나마 편할 게 아닌가”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노동조합이 스스로 희망퇴직자를 모집해 회사를 구했다.

도쿠지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회사가 정상화된 뒤 자신의 주식을 전부 종업원들 앞에 내놓았다. 서로간의 신뢰가 두터웠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도쿠지. 앞서 살펴본 그의 삶은 그야말로 운명의 역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가 가난한 집에 양자로 보내지지 않았더라면, 여덟 살에 견습직공으로 출가하는 고통을 겪지 않았더라면 샤프펜슬의 발명은 없었을 것이다.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도쿄에서 쌓아왔던 모든 사업기반을 무너뜨리지 않았더라면 일본 최초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개발도 없었을 것이다. 회사 종업원의 절반을 내보내야 했던 경영위기를 겪지 않았다면 과감히 반도체 사업에 모든 것을 걸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도쿠지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고, 대지진이라는 재난에도 굴하지 않았고, 패전의 잿더미에서도 마지막 열정과 노력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남을 뒤따라가려 하지 않고, 남이 모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 했다. 그의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에 샤프는 지금 일본은 물론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서희선 기자 samecor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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