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한 분은 하나의 도서관
노인 한 분은 하나의 도서관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4.17 2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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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의 <인생 부자들>

 

[북데일리] 자기 자신의 욕망과 내면에 솔직하게 귀 기울여 삶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여기,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우직하게 열정과 뚝심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부자들>(중앙m&b. 2014)은 저널리스트 겸 문화 평론가인 조우석이 쓴 인터뷰집이다. 2010년 가을부터 <여성중앙>에 연재한 인터뷰 칼럼에 이야기를 더해 펴낸 책이다. 책에는 ‘인생부자’ 열두 명이 소개된다. 그들은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일에서 확고하게 ‘인생 내공’을 쌓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나이 마흔다섯에 데뷔한 소리꾼 장사익, 전방위 예술가 현태준, 우리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비구니 스님 정목, 한국학자 고 김열규 교수와의 마지막 인터뷰. 외에도 시인 문정희와 배우 김미숙, 광고인 김홍탁, 시인 류근 등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천하의 김지하가 시귀(詩鬼)라 부른 여인 문정희. 그녀는 1960년대 여고생 문인 스타로 등장해 미당 서정주의 총애를 받았고, ’한국의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별명을 얻은 여류 시인이다. 허나 그녀 자신은 “큰 바다에 던져진 바리데기”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열한 살 때부터 도회지에 혼자 던져졌어요.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부모를 떠나 광주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정말 큰 모험이었지요. 그때부터 혼자 고독과 슬픔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무언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지요.” (p.79)

그녀에게 인생은 외로움이었고, 그 외로움이 자신의 시를 격렬하고 웅장하게, 불새처럼 날게 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현대미술의 본고장인 뉴욕을 뒤흔든 사진작가 김아타. 그의 인생도 수많은 실험과 실패의 산물이다. 그는 독학으로 사진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인 <니르바나> 시리즈를 전후해 그는 이름을 김아타(金我他)로 바꾸었는데 “주어진 조건대로 살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각오”였다.

“그 작업을 끝내고 지금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어. 주변에 그걸 여러 차례 고백했어. 오랫동안 품어온 의문의 덩어리가 풀렸으니, 오랜 수행 중에 한 소식을 했다는 불교의 고행자들이 하듯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지. 인간이란 게 뭐야? 결국은 거대한 관념 덩어리가 아니야? (중략) <니르바나> 첫 촬영을 통해 그걸 몽땅 날려버리는 데 성공했잖아.” (p.267)

이후 그는 낡은 통념과 상식의 틀을 무시하는 <해체> 시리즈,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철학을 나타내는 <온 에어> 프로젝트 등으로 현대사진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는 예술가로 타고난 DNA와 환경의 비중이 2 대 8이라고도 했다. 그것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단, 1등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보다 ‘나답게’를 목표로 하면 돼. 그게 포인트야!” (p.282)

특히, ‘죽기 직전 꼭 한번 울음을 남긴다’는 백조처럼, 생전 마지막이 되어버린 한국학자 고(故) 김열규 교수와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그는 한국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 모두를 다루는 책 등 평생 70여권을 썼다. “노인 한분이 돌아가신다는 것은 훌륭한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책을 통해 능소화가 피어 있는 한여름, 고성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를 읽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꿋꿋하게 내공을 쌓은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는 많은 울림을 준다. 문득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들 때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독일어로 외로움이나 고독을 표현하는 단어 로 ‘알아인(allein)에 대해 설명하는 김 교수의 육성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알아인’은 영어로 치면 ‘all'과 ’one'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절대적으로 혼자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홀로 있어도 충분히 자족적인 나를 뜻하죠. 제가 꼭 그래요. 저는 혼자 있다고 해도 외롭다는 말은 결코 쓰지 않습니다.” (p.335)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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