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꼽은 '감동 책 세 권'
법정 스님이 꼽은 '감동 책 세 권'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8.22 1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북데일리] “나에게 감명 깊은 세 권의 책을 꼽으라면, 그 안에 이 책이 있다.” - 법정 스님의 추천사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 2013)에 대한 글이다. 책은 헤세가 31세부터 37세 사이에 쓴 글을 모은 것으로, 2001년에 출간된 <정원 일의 즐거움>의 개정판이다. 그는 어디에 살든 일생 동안 정원을 가꾸며 살았는데, 전원에서의 삶을 수채화로도 그린 뛰어난 작가이자 화가이며 원예가이다.

책은 그가 정원 일이라는 단순한 노동을 통해 배운 자연과 인생에 관한 사유를 담았다. 흙 냄새, 꽃 색깔, 낙엽 소리, 공기의 흐름 등 한편 한편이 생동감 넘치고,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여 주기도 한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정원사나 게으름뱅이들은 다르다. 우리처럼 꿈을 꾸거나 겨울잠을 자는 사람들은, 그저 달콤한 겨울잠 속에 빠져 있다가 어느새 봄이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부지런한 이웃들이 이미 일을 다 해 놓은 것을 보고는 당혹스러워한다. 우리는 부끄러워져서 소스라치며 벌떡 일어나 바삐 서두른다. 게으르게 놓아두었던 것들을 뒤늦게 만회하려고 정원용 가위를 맷돌에 갈기도 하고, 조급하게 씨앗 상인한테 편지를 써 주문을 하기도 한다.(중략)

어쨌든 간에 자연은 너그럽다. 결국 그 게으른 자의 정원에도 시금치와 상추로 가득한 채소밭이 만들어질 것이고 몇몇 과일과 즐거운 눈요깃감이 될 여름꽃들도 무성하게 피어날 것이다.” (p.13~p.14, '즐거운 정원'중에서)

그는 양대 세계대전을 겪고, 망명 생활을 하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정원 일을 통해 그런 혼란과 고통에 찬 시대에 영혼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빠르게’가 우리의 표어가 된 시대에 그가 특별한 기쁨을 느끼는 비법을 들어보자.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은 절제하는 습관에서 나온다. 이런 능력은 원래 누구나 타고 났으나 현대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왜곡되고 잃어버린 채 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들이다.(중략) 이런 작은 기쁨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찬사를 받지도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중략)

고개를 높이 들어라, 친구들이여! 한번 시도해보라. 어디서나 한 그루의 나무 또는 적어도 한 줌의 멋진 하늘을 볼 수 있다. 굳이 파란 하늘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하늘의 햇빛을 느낄 수 있다. 아침마다 잠시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을 지녀라.(중략)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튼튼한 말, 멋진 개 한 마리, 삼삼오오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p.71~p.72, '작은 기쁨'중에서)

그에 따르면 인생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충족되는 가운데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 그 행복이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해도 그런대로 괜찮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그윽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곳에 머무를 수 있는 고향이 생긴 기분, 꽃들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지게 되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책임을 지게 되는 기분, 몇 그루의 나무와 화초, 그것들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기분은 그처럼 행복하다.

책에는 작업복 차림으로 일하는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런 연유로 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소장하고픈 책이 될 것이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날, 혹은 과꽃이 피기 시작하는 가을날, 어느 때든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