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반쪽만 알고있는 `한용운 시인`
얼굴 반쪽만 알고있는 `한용운 시인`
  • 북데일리
  • 승인 2007.01.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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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서점

서울 숙대입구역(4호선) 앞

02) 798-5589 . 011-346-1589

<1〉 만화쟁이 아저씨 만나고

서울역과 숙대입구역 사이에 재미난(저한테만 재미난지 모르겠으나) 골목길이 있습니다. 종로구처럼 한옥이 빼곡히 들어선 골목길은 아닙니다. 이 골목길에서는 지난날 일제강점기 자취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연속극이나 광고나 뮤직비디오 따위를 찍을 때 곧잘 이리로 온다더군요. ‘현대 삶’과는 퍽 동떨어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해서. 요샛말로 하자면 ‘개발이 뒤떨어진’ 곳이고, 이명박 말로 하자면 ‘뉴타운으로 뽑아서 싸그리 무너뜨리고 아파트 새로 올릴’ 곳입니다. 그래, 이곳은 모두 ‘뉴타운’으로 뽑혀서 머잖아 죄 갈아엎는다고 합니다. 이런 곳, 서울역과 숙대입구역 사이에 ㅇ이라고 하는 만화가 아저씨 일터가 있습니다. 만화가 ㅇ 아저씨를 만나고자 이리로 찾아가는 길입니다.

만화가 ㅇ 아저씨가 깃든 곳은 조금 묵은 주택(박정희 때 지은 문화주택이 아닐까 싶은데) 한켠에 임시로 짜 넣은 집. 겨울이면 바람이 많이 들어 춥겠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는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흙이 있고 몇 가지 남새를 기를 수 있습니다. 또 문을 열고 계단으로 올라서는 바로 옆에 우람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제 나이보다 많겠구나 싶고, 제 두 팔을 벌려도 안기 어려울 만큼 큽니다. 좁은 집구석, 더 좁은 마당 한켠에서 아주 고달프겠군요. 이런 우람한 나무도 ‘뉴타운 개발’이 들이닥치면 곧바로 삽차 칼날에 찍혀 숨을 거두리라 봅니다.

누가 이 큰 나무를 옮겨 심겠어요. 옮겨 심으면 돈이 대단히 많이 든답니다. 하지만 나무를 뚝 부러뜨려 죽인 뒤 내다 버린 다음 새로 사서 심으면 돈이 아주 적게 든답니다. 10갑절쯤 벌어진다고 하든가……. 사람목숨도 돈으로 헤아리는 세상이니, 나무목숨이야 말할 건더기도 없습니다.

<2〉 책 구경

만화쟁이 아저씨를 만난 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어차피 남영동 쪽으로 온 김에 헌책방 〈우리서점〉을 들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걸어갑니다. 잠깐이라도, 고작 몇 분이라도, 책 한 권이라도 구경하고 가려고요.

다른 책손이 없어 조용한 〈우리서점〉에서(요새는 다른 헌책방도 책손이 드물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참 쓸쓸합니다) 혼자서 이 골마루 저 골마루 누비며 이 책 저 책 들추어봅니다(이곳 골마루는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지만). 먼저 《고도원 엮음-어린이에게 띄우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아이들판. 2003)가 눈에 뜨입니다. 고도원 님이 읽은 책 가운데 100권을 추려서 이 가운데 아이들하고 함께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대목을 짧게 옮긴 다음 자기 생각을 덧붙인 글을 실은 책입니다.

[진주보다 귀한 것] 배가 고픈 암탉이 먹이를 찾으려고 땅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앗, 이게 뭐지?” 암탉이 발견한 것은 콩알만한 진주였습니다. 암탉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보석상에서 보면 꽤 좋아하겠군. 하지만 나에겐 진주보다 보리 한 톨이 더 소중한데…….” ? 《라 퐁텐-우화집》 에서

[고도원 님 말]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주먹만한 금덩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장 목을 축일 수 있는 물 한 방울이 더 중요하지요. 무엇이든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있어야 비로소 그 값어치가 소중해집니다. (28?29쪽)

백 가지 책에서 뽑을 때는 자칫 뒤죽박죽이 되기 쉬운데, 백 가지 모습이 잘 살아나는구나 싶습니다. 이분 책이 두루 사랑받는 까닭을 헤아릴 만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원고 부피는 얼마 안 되는데 책이 너무 큽니다. 이에 따라 책값도 원고 부피와 견주면 너무 비싸요. 이런 책은 아이들이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볼 수 있도록 자그마한 판으로 짜서 더욱 값싸게 펴낸다면 한결 좋으리라 봅니다.

<**3>

《고광민-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대원사. 2004)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갓 나왔을 때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았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 뒤로 다시 만날 일이 없었는데 이태 만에 다시 보는군요. 이번에는 헌책방에서. 나중에 새책방에서 주문해서 받아 볼까 하다가, 그냥 오늘 만난 김에 고르기로 합니다. 《김성구-옛 전돌》(대원사,1999)이라는 책도 고릅니다.

.. 그러나 집안의 태왕릉이나 천추총의 분구 위에서 글씨가 새겨진 문자 전돌이 출토되고 있어서 중요시되고 있다. 백제는 공주 송산리에 있는 송산리 6호분과 무녕왕릉을 축조한 묘전돌이 잘 알려져 있다 … 궁궐이나 사원 등 지상 건축물의 실내외 바닥이나 기단에 사용되는 전돌로, 여러 종류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며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전돌이다 … 통일신라시대에는 벽전돌ㆍ탑전돌ㆍ특수 전돌 등과, 연꽃무늬나 보상화무늬 드잉 새겨진 부전돌이 다양하게 제작되어 화려함과 장식성의 극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 (20?21쪽, 33쪽)

문득, ‘전돌’이라는 집 문화는 ‘권력자 집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찬찬히 살펴 읽는데, 전돌이 쓰인 곳은 임금님 무덤이라든지 절이라든지 궁궐 같은 곳일 뿐, 백성들이 살던 집에 전돌을 썼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나옵니다. 아무래도 백성들 살림집 유물은 거의 안 남아 있어서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면 고구려-백제-신라 때 백성들 살림집 문화란 없을까요? 그때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요?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왜 찾아볼 수 없을까요? 유물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고구려 백성들 살림집에 눈길을 두는 사람이 없고, 이런 데에 눈길을 두어야 좋다는 생각조차 안 하지 싶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역사 연속극을 보면 죄다 임금과 신하들 같은 권력자 이야기만 나올 뿐, 백성들 이야기는 없잖아요. 또, 백성들 살림집이나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적도 없습니다. 어쩌다가 잠깐 스쳐 지나갈 뿐. 거의 싸움판 이야기뿐인데, 싸우는 일이야 ‘무대나 배경 되살리기’를 안 해도 좋기 때문일지 모르겠군요.

《마르셀 마르나/황의방 옮김-파울 클레》(열화당,1979)라는 손바닥책이 보여서 고릅니다. 이이 ‘파울 클레’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자기 그림세계를 남다르게 열어젖히며 꾸준하고 꿋꿋하게 한 삶을 살았구나 싶어서 한번 살펴보려고요.

.. 1900년에서 194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클레는 무려 9146점의 작품을 생산해냈다. 언뜻 보아도 이것은 매우 믿기 어려운 숫자이며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숫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이들 작품의 거의 모두가 한결같이 새로운 경이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노선을 따라 발전한 화가치고 지루한 반복없이 그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화가는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클레는 매우 다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의 주목할 만한 화가(피카소)와는 달리, 그와 같은 다산 속에서도 무절제나 자기만족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이유는 단 하나, 즉 그의 눈으로 볼 때 창조적 행위는 바로 리얼리즘의 죽은 소재로부터 예기치 못했던 것과 경이로움을 추출해서 다시 이것들을 순화시킴으로써 모든 우연과 불완전을 제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46?48쪽)

<3〉 교과서에서 벗어나야

《한용운-한용운 시집》(정음사. 1974)이 보여서 집습니다. 한용운 님 시는 고등학교 다닐 때 한 권 사서 읽은 적 있습니다. 그때 한 번 읽기는 했지만, 열 몇 해가 지난 지금이니까, 이제 와서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일 수 있겠지요.

까마귀 검다 말고

해오라기 희다 마라

검은들 모자라며

희다고 남을소냐

일없는 사람들은

옳다 긇다 하더라 〈禪境〉

글쎄, 제가 고등학교 때 사서 읽은 한용운 님 시 모음에도 이런 작품이 있었는지? 있었는데 못 보았는지.

맑은 물 흰 돌 위에

비단 빠는 저 아씨야

그대 치마 무명이요

그대 수건 삼베로다

묻노니 그 비단은

뉘를 위해 빠는가 〈漂娥〉

생각해 보니, 이런 시를 보았을 수 있고 못 보았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한용운 님이 쓴 시 가운데 ‘님’을 읊지 않은 이런 짤막한 작품은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첫새벽 굽은 길을

곧게 가는 저 마누라

공장 인심 어떻던고

후하던가 박하던가

말없이 손만 젓고

더욱 빨리 가더라 〈직업 부인〉

책끝에는 임중빈 님이 한용운 님 시를 헤아리는 글을 붙입니다. 이 글을 보니 〈직업 부인〉 같은 시를 보기로 들면서 “생활 체험과 사회 현실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창작으로 발전시킨 孤雲의 경우, 가난한 江南女가 온종일 베틀에 앉아 땀흘려 비단을 짠들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萬海가 파악한 우리 사회 현실과 민중의 생활 단면에서도 빨래하는 여인을 통하여 부조화 관계가 나타난다. 만해는 막연하게 님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생애를 보낸 것이 아니라, 중생의 사회적 생존에도 결코 등한하지 않았다.(163쪽)”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또는 문학 참고서에 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모습만으로 한용운 님을 바라보게 할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용운 님 시만 ‘치우쳐 생각하도록’ 이끄는 제도권교육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은 어떻고요. 수필은 다를까요? 동화나 동시는 어떻지요?

제도권학교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나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도권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 이야기만이 옳다고 믿는다면, 또는 제도권학교 밖에 있는 이야기에는 눈길을 두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길로 빠진다고 느낍니다. 세상을 치우쳐서 바라보라고 가르치지는 않잖아요. 제아무리 ‘대학교바라기 입시교육’ 학교라고 하지만, 남을 괴롭히고 등 처먹고 못살게 구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는 않잖아요. 자기 개성을 죽이고 없애고 개나 소나 다 똑같은 사람으로 되라고 가르치지는 않잖아요.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보아야 좋을까요. 무엇을 느끼면 좋을까요.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교과서 하나만 본다면, 교과서 아닌 책은 살피지 못한다면, 학교를 떠난 뒤 자기가 만나거나 찾는 책이 ‘교과서 틀이나 테두리’에서만 맴돈다면 어찌 될까요.

누군가 학교에서는 문학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 적 있습니다. 지금처럼 대학교바라기 입시교육에서는 문학을 엉터리로 가르칠 뿐 아니라 문학 참맛을 못 느끼게 하기 때문에, 이렇게 문학을 가르치면 나중에 문학하고 담을 쌓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외친 줄 압니다.

저도 이분 목소리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철학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사회와 정치와 경제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예술도 가르치지 말고 과학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역사와 문화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괜히 학교에서 ‘국어’라는 이름으로 우리말과 글을 엉터리로 가르치는 일도 안 하면 좋겠어요. 지금 모습을 본다면, 차라리 학교교육에서는 시험문제만 가르치면 좋겠어요. 다른 이야기는 아이들이 알아서 ‘학교 밖’에서 자유로이 배우도록 놓아 주면 좋겠어요. 미국말을 배우든 중국말을 배우든 러시아말을 배우든 일본말을 배우든 아이들이 알아서 스스로 찾아서 배우도록 하면 좋겠어요. 괜히 이런저런 교과목으로 뭉뚱거리거나 때려 넣어서 참다운 배움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문학이 얼마나 재미난 학문인데요, 과학이 얼마나 슬기로운 학문인데요, 철학이 얼마나 깊이 있는 학문인데요, 역사가 얼마나 신나는 학문인데요, 예술이 얼마나 즐거운 우리 삶인데요. 이 모든 재미와 슬기와 깊이와 신남과 즐거움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학교교육 아닌지요. 한용운을 한용운 아니게 가르치는 학교교육 아닌지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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