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끙끙 앓게 한 `칼로의 악마들`
며칠 끙끙 앓게 한 `칼로의 악마들`
  • 북데일리
  • 승인 2007.01.0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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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살아온 날들 중 가장 여유로웠다고 생각되는 시간이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시간에 떠밀리던 삶에서 벗어나 생의 어떤 결절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겁쟁이가 큰 결심을 했고, 여름에 무작정 ‘서른맞이 大여행’을 떠났고, 숨 쉬는 매 순간이 기뻤고, 여기저기 기생하며 몸은 고되었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뉘었습니다. 참 좋았던 충전이었습니다.

겨울이 왔고, 내내 비가 오자, 동면을 결심한 후, 바깥에 거의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습니다. 서울의 누군가가 소포비가 비싸다고 구시렁대며 미국까지 보내온 소포 꾸러미에는 다른 몇 권의 평론집과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문학수첩. 2005)이 정하게 들어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학수첩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써 있어, 뭔가 싶어 이장욱의 소설을 집어 들어 후기만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그 시인이 맞더군요. 작가에게 시와 소설은 ‘흑묘(黑貓), 백묘(白貓)’와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보는 순간, 시인인 그가 낸 소설집이라 조금은 저어했었던 생각과는 달리 흥미가 동했습니다. 그의 실용주의 노선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묘한 호기심에 이끌려 곧바로 머그잔을 끌어안고 이내 읽기 시작했고 그 후로 별다른 이유 없이 며칠을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 앓았습니다.

네, 제가 네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숨은 소설은 이장욱의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입니다. 읽고 며칠을 앓았다고 하면서도 추천하는 제 저의가 의심스러우시다구요? 숨은 소설을 꺼내놓을 뿐, 저의는 전혀 없으니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에 칼럼을 쓰면서 세 번째로 읽어봤는데 면역력이 생겨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았답니다. 농담입니다. 아무튼 이 밀도 높은 공허함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 놓아드립니다. (뭐, 우연히 저처럼 아프시더라도 저는 책임이 없습니다. 아시죠?)

작가의 역량도 욕심도 참 부럽습니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또 평론까지. 올해 초 유일하게 30대 ‘창비’의 편집위원이 되기도 한 분이지요. 작가의 시는 대체로 포스트모던 계열에 속하는 시들로, 별다를 것 없는 것을 별다르게 서술하는 데 그 매력이 있습니다. 언어 또한 명확하구요. 작가의 시는 나른하게 하품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고 퍼뜩 깨게 만들어주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을 줍니다.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민음사. 2002)에 이어 최근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 2006)이라는 시집 또한 나왔더군요. 시집 좋아하시는 분들, 접해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매력적이라 느꼈었던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를 빼면, 그의 소설 역시 별다를 것 없이 전개됩니다. ‘체면’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우리는 사실, 벗겨보면 모두 같고,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런 비루하기까지 한 인간사를, 인간 군상들을 보태거나 빼는 일 없이 고스란히 그리고 메마르게 보여주고 있어 읽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기도 합니다. 발달장애 딸아이를 두고 있는 동화작가 여인, 애인과 밀월여행을 가다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연락을 받은 사내, 애인을 뺏기고 빼앗는 일이 흔했던 그렇고 그런 학창시절, 그 때 만났던 애인과의 재회에서 느끼는 익숙했던 끈적함, 팔 한 쪽이 없는 복권 파는 사내의 변함없는, 변함없기를 바라는 일상까지.

삶이 주체의 의지를 따를 수 없고, 이성적 인과율의 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우연이 사슬같은 견고함을 가지고 얽혀 있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이라는 것에 떠밀리고 맙니다. 굴복하고 말게 되는 것이죠. 그럴 때 참 막막합니다. 어디에 항변해야 하는 지, 어디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 지, 어떻게 다시 추스려야 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괴로운 시간들입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고, 정말 악마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둠의 긴 터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품에 등장하는 멍한 발달장애 아이의 시선처럼 볼 뿐, 인지하지 못하고 많은 것들을 흘려 보냅니다. 또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숨쉴 뿐, 갈라파고스의 자이언트 거북 ‘조지’처럼 오랜 시간 이미 혼자인지도,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메말라 버린 감정의 조각들을 붙잡고 있자니, T. S. Eliot의 시들이 머릿속에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네요.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에 나오는 ‘칼로’는 17세기 프랑스 판화가 자크 칼로를 말한다고 합니다. <전쟁의 참화>에 나타난 악마의 모습을 차용한 듯한 이 ‘악마’가 그러한 인간들의 건조하고 밋밋한 모습을 즐기고, 장난 삼아 조금씩 비틀며 항변할 수 없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사슬을 계속 만들어내는 거겠지요.

그의 소설 언어는 건조하지만, 분명하게 살아있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잘 쓰려면 시 쓰기부터 먼저 배우라고 권했던 선배들의 말을 작품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의도대로 언어를 끌고 갈 수 있는, 언어에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5일 간의 시간을 곱고 촘촘하게 짜낸 닫힌 구조와 교차하는 시점들,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상징에서 작가의 역량의 대단함과 꼼꼼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작가가 독서실 같은 닫힌 공간에서 몇 개월씩 수강하며 늘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도한다는 기사를 얼핏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치열함이 뿜어낸 언어라 역시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그만 두고 어떻게 글만 쓸까’가 늘 고민이라는 작가의 모습에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보며 웃음 짓습니다.

정해년 새해입니다. 돼지해더군요. 두루 평안하시고, 부디 책 많이 잡수시는 한 해 되길 바랍니다. 참, 이 책 읽고 아프지 않으시길!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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