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에 시작된 행사는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앞당겨져 끝이 났다. 일찍부터 대기하던 열혈 팬들 덕에, 준비된 도서가 모두 동이 난 것. 김영하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홍보라곤 개인 홈페이지(http://kimyoungha.com/)에 올린 게시글과 학교에 붙인 몇 개의 공고문이 전부였단다.
뜻밖의 열렬한 호응에 한껏 ‘고무된’ 작가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책은 거저 주면 안돼요. 돈을 주고 산, 책이라야 소중히 여길 수 있죠.”
김영하가 반값으로나마 독자에게 책을 판 이유다. 이날 총 수익금은 80여만 원. 평소 고양이애호가로 알려진 그는, 이를 ‘동물구조협회’와 ‘동물학대 방지협회’에 각각 기부할 예정이다.
더러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는 이도 있지만, 작가는 이 같은 벼룩시장이나 헌책방을 통해 판매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사람이 이를 찾아 구입할 수 있지만, 도서관에서는 그저 서가 속에 묻힐 뿐이라고. “책은 돌고 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터뷰 내내 김영하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짧게 답했다. 그가 긴 호흡으로 말하기 시작한 건, 베스트셀러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부터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이 10만부 팔릴 때는 독자 모두가 친구 같더니, 100만부가 팔리니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외롭다고 했다잖아요. 맞는 말이에요. (판매부수가) 100만부가 넘으면 그 작가를 지지하는 열정적인 독자층이 사라져요. 시류에 편승하는 것 같고, (작가를) 대중에게 빼앗긴 것 같고. 그들은 더 새롭고 참신한 신인 작가를 찾아 떠나죠. 어떻게 보면, 뜨내기 독자만 남는다고 할 수 있어요.”
김영하가 베스트셀러 작가보단 독자에게 사랑받는 작가를 ‘고집’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그는 평균 4~5만부가 팔리고, 절판된 책 없이 꾸준히 쇄가 나오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김영하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구입하는 고정 독자층 덕분에, 대중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마음껏 이야기하는 ‘자유’도 누릴 수 있다. 준비 중인 신작도 “이전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특이한 책”이다. 에세이도 소설도 아닌 ‘정체불명’의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건 이처럼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장편소설은 내후년쯤 발표할 예정. 현재는 자료를 수집하며 내용을 구상중이고, 겨울방학에 집중적으로 집필에 매달릴 생각이란다.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 한줄기 빛도 새어나오지 못하게 블라인드로 가린 창문. 책상 위 스탠드 조명 하나에 의지한 채 작가는 오늘도 글을 쓴다. 집필은 그 혼자 벌이는 ‘사투’지만, 먼발치에서 응원하는 독자가 있기에 김영하는 결코 외롭지 않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