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박사 뒤엔 지혜로운 어머니 있었네
이휘소 박사 뒤엔 지혜로운 어머니 있었네
  • 북데일리
  • 승인 2006.10.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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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책 한권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던 적이 있었다. 바로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다.

핵폭탄을 일본 근처의 무인도로 떨어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수차례 읽어도 질리지 않는 통쾌함을 주었다. 책을 읽은 이는 누구나 알게 되는 인물, 핵폭탄과 깊은 연관이 된 사람, 이휘소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이 박사의 모습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일단 일차적으로 윤색되어 있다. 책은 그에게 ‘핵폭탄 제조자’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때문에 독자들은 우리나라에 핵폭탄을 제조할 기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궁금증을 일으킨다.

반면, 평전 <이휘소>(작은씨앗. 2006)는 박사의 모습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 자서전이 아닌 평전, 즉 그를 가까이 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이 낸 한 권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이휘소 박사의 어린시절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위대한 인물의 뒤에는 항상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어머니는 호기심 많은 아들을 책으로 이끌었다.

"엄마도 모든 걸 다 알지는 못 한단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은 걸."

"엄마는 궁금한 게 있을 때는 누구에게 물어?"

"책을 읽지. 책 속에는 내가 궁금해 하는 게 다 있거든."

"요즘에는 왜 질문을 하지 않니?"

"질문을 하지 않는 인간은 날지 않는 나비와 다를 바 없단다!"

"어때? 책 속에 모든 해답이 있든?"

"답을 찾기 위한 독서도 좋지만, 질문을 찾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해."

어머니는 책 읽기뿐만이 아니라 책 속에서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까지 알려준 스승이었다.

해방이 되고, 6.25 전쟁 발발과 전쟁 폐허의 재건이 일어나던 때, 이휘소 박사는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여기엔 어머니의 노력이 컸으며, 유학 생활에서도 어머니의 원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10년이 흘러 이휘소 박사는 독보적인 물리학자가 된다. 그의 논문은 학계에서 이슈가 되고 노벨상에 근접해졌다.

이휘소 박사는 다이너마이트가 산업화에 큰 기여를 했지만 전쟁무기로 사용된 사례를 들어, 자신이 연구하는 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순수학문을 넘어서서 악용되는 것엔 반대했다.

책은 이같은 이휘소박사의 입장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박사의 진면목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저자(이용포)의 집필의도인 것 같다.

저자는 박사의 어머니에게 자식에 관한 회상을 듣는 한편,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을 바탕으로 평전을 완성했다. 이휘소 박사가 오래 살았다면 인류에 공헌을 크게 할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42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박사의 사인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이휘소 박사에 관한 사진들을 다시 더듬어 본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까. 사진으로나마 과거의 흔적을 뒤좇아 본다.

[북데일리 장하연 시민기자] xx2000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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