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도 경쟁력이다
모방도 경쟁력이다
  • 아이엠리치
  • 승인 2007.05.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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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스스로 하늘에서 떨러지듯이 ‘짠’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과거에 있던 것들 중에서 개선되거나 연관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결합돼 생기게 된다. 이렇게 과거의 어떤 것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것을 ‘벤치마킹’ 이라고도 하고 ‘모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세계적인 기업들 사이에서는 ‘Innovation through imitation(모방을 통한 혁신)’ 이라는 r개념이 유행하고 있다. 


경영난에 빠진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Ford)의 CEO(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앨런 멀럴리(Mulally) 전 보잉 부사장은 ‘모방을 통한 혁신(innovation through imitation)’을 강조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보잉에서 성공을 거둔 ‘린(lean) 생산 방식’을 포드에 도입하는 데 주력해 낮은 비용으로 최적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원래 이 방식은 도요타 자동차가 원조인데 항공회사가 도입하고 다시 자동차업체가 배우는 셈이다.


보잉은 도요타 생산방식뿐 아니라 GE의 직원교육시스템도 모방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보잉의 ‘리더십센터’는 GE의 연수원인 크로톤빌을 모방하고 개선했다. 보잉사는 직원들에게 도전적인 업무를 맡겨 역량을 키우는 인재육성 방식을 활용하는데, 이 방식은 GE가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쓰고 있는 ‘도전적 목표 설정(stretch goal)’에서 배운 것이다. 보잉의 교본이 된 GE 역시 모토롤라에서 시작된 ‘6시그마’를 도입해 최고의 경영혁신기법으로 발전시킨 모방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업종이 다른, 자동차와 항공기 업체 간의 ‘상호 학습(mutual learning)’은 새삼스런 현상이 아니다. 업종과 기업규모를 가리지 않고 좋은 시스템을 발굴해 모방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모방을 통한 혁신’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알코아(Alcoa)의 ‘작업 중 사고 방지 프로그램’은 미국 병원들로 전파됐다. 병원들은 모든 사고를 실시간으로 보고해 사고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는 알코아 시스템을 도입해 병원 내 감염 등 한 번 발생한 의료사고의 재발을 막고 있다.


조선(造船)업체는 선박 엔진의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항공사 엔진 제조업체를 벤치마킹한다. 또 자동차 딜러가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메리어트 등 특급호텔의 서비스교육 프로그램을 배우고, 병원이 환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핵발전소의 안전규정이나 해군의 훈련규정을 참조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병원들은 수술실에서 ‘이유가 있으면 멈춘다(the pause for the cause)’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환자의 병력(病歷)과 수술의 진행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던 의료진들 중 누구라도 문제를 발견할 경우 수술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중단된 수술은, 발견된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재개된다. 자동차를 만들다가 하자를 발견했을 경우 누구든 생산라인을 멈출 수 있는 도요타 방식을 빌린 것이다.


다른 업종 간의 모방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모방 기업이나 피(被) 모방 기업이 서로 같은 시장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두업체들은 같은 업종의 후발업체들에게는 핵심 경영 노하우를 공개하기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업종의 업체들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품지 않는 게 보통이다.


바이엘-BP-IBM-GE 등 글로벌 기업들은 아예 모방을 상시화하자는 취지에서 서로를 지속적으로 배우기 위한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모방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각자가 갖고 있는 핵심 역량에 서로의 장점을 더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모방을 통한 혁신’은 남의 것을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더욱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단순한 표절과는 다르다. 또 상품 자체를 베끼는 게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발굴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에 모방보다는 혁신에 가깝다.


모방을 통한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배우겠다는 겸손한 자세를 갖추고, 객관적인 자기 평가와 분석을 통해 무엇을 배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무턱대고 선진적인 제도라면 가리지 않고 배우려다가는 자신의 핵심 경쟁력마저 잃기 쉽기 때문이다.


모방을 통한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 즉 핵심역량이 무엇인지를 쉽게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사의 조직과 제품 프로세스를 철저히 분석하고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남의 것도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타 기업에서 배운 노하우를 자사의 실정에 맞게 변형해 적용하기 위해서도 자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학습은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필요로 한다. 타인과 미래 앞에 겸손하지 않다면 배움은 불가능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모방학습의 대상에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는다. 항시 눈과 귀를 열고 선진국의 초일류기업뿐 아니라 정부 등 공공부문, 중진국과 제3세계 기업의 동향까지 예의 주시하고 장점을 배운다. ‘모방을 통한 혁신’의 키워드는 끊임없는 관찰과 학습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경쟁력을 끊임없이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것이 있으면 겸손하게 받아드리고 자기에게 맞게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영권 명지대학교 겸임교수 및 세계화전략연구소(www.bestmentorclub.org)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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