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여행은 방랑이다
참된 여행은 방랑이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08.0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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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방랑처럼 떠다닐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을 좀 아는 사람이다.

중국의 작가 임어당(1895~1976. 사진)의 말을 빌리면 "여행은 방랑이다. 여행의 본질은 의무도 없고, 일정한 시간도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 소식도 전하지 않고, 환영회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다니는 나그네 길이다."

장 그르니에는 `섬`(1997. 민음사)에서 이렇게 썼다.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 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 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의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 휴가철이다. 휴가를 여행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일반화된 요즘, 낯선 곳, 낯선 시간 속에서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만의 비밀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어떨까. 겸허하고 남루하게, 그리고 만나는 거처와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그야말로 방랑자처럼.

임어당은 또 말한다. "좋은 나그네는 내일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이고, 더 좋은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임어당은 그리니에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는 목적지도 없이 의무도 시간도 없이 떠돌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방랑처럼 세상에 자신을 던지고 물고기처럼 헤엄쳐서 파닥거리라고 권한다.

그르니에는 마치 자신을 지워내 버릴 수 있는 낯선 곳, 낯선 사람으로의 귀의를 말하는 듯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멕시코의 더 이상 `추억이 존재하지 않는 해변`처럼. 겸허하고 남루하게 살아보라는 것은 새 거처에서 시작하는 삶의 새롭거나 비밀스러운 정착 같은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여행 가기 전에 음미해볼 만한 영혼의 비타민 같은 책은 없을까. 빈프리트 뢰쉬부르크의 `여행의 역사`(2003. 효형출판)와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2004. 이레)이 조그만 단서를 제공한다.

`여행의 역사`에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동경심의 발로가 바로 여행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여행의 시작`은 재화와 보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었다. 그러나 그 욕망의 발전 과정이 `여행의 시작`이었다는 것.

인류는 온갖 위험과 고통을 무릅쓰면서도 마르코 폴로처럼 미지의 세계의 여행을 통해 세계를 더 크게 보고 세상을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독일의 역사가 빈프리트 뵈쉬부르크는 인류의 출현부터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현대까지 수많은 여행가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부제는 `오디세우스의 방랑에서 우주 여행까지`다

`여행의 기술`은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은 듣기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여행은 생각의 산파로 움직이는 비행기,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고 강조한다.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받으면 술술 풀려나간다. 한마디로 책을 들고 다니며 새로운 광경, 장소를 만나라고 권한다.

공상 속의 잠입자도 아니고, 지식 정보나 위락을 위한 여행자도 아닌, 무턱대고 방랑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임어당의 `방랑` 같은 여행과 장그리니에의 `비밀`에 더해, 호기심과 동경, 그리고 내적인 사유를 위한 준비를 해주면 금상첨화이리라.

여름 휴가철 세속 도시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거창한 표현들이 가끔씩 폐부를 찌르고 달겨 붙는다. 마음속에 어쩔 수 없이 파고드는 방랑에 대한 동경과 환상 같은 것이다. 그러나 좋은 여행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북데일리 박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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