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채기 투성이의 삶을 위무하는 류하완 작가
생채기 투성이의 삶을 위무하는 류하완 작가
  • 임채연 기자
  • 승인 2023.08.14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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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같은 마스킹테이프 정사각형 네모가 상처 감싸
25일까지 갤러리마리 개인전...의도된 우연 추구
류하완 작가 작품.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류하완 작가는 마스킹테이프를 작업의 주된 도구로 삼아 행위의 흔적, 시간의 흔적이 레이어드된 독특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온통 네모로 뒤덮인 화면은 작가가 긴 마스킹테이프를 잘게 자른 후 채색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25일까지 갤러리마리에서 류하완 작가의 개인전 ‘Crossover’가 열린다.

작업의 시작은 마스킹테이프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잘라내는 것이다. 물에 약한 종이 재질의 마스킹테이프를 캔버스에 붙인 상태로 채색을 하게 되는데, 이때 붓이 지나가며 물감이 스며들기도 하고 밀려나기도 한다. 건조 후 다시 테이프를 붙이고 물감을 끼얹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함으로써 일반적인 채색 방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이한 색층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것을 우연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재료와 색상이 혼재된 류하완의 작업은 이렇듯 ‘테이핑-페인팅-떼어내기’라는 계획된 방식의 행위와 계산되지 않은 우연의 효과가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겹겹이 쌓인 마스킹테이프를 화면에서 모두 떼어낸 후의 모습을 그 행위를 하는 동안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모양이 어떤 색으로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작업을 이어가고 마지막으로 마스킹테이프를 다 뜯은 후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이 흥미로운 작업은 상당한 시간과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는 고된 예술노동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은 ‘우연’을 의도하기 위한 것이다.

류하완 작가 작품.

작가의 많은 작업에서 창문이나 커튼 또는 난간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표출된 것이다. 알 수 없는 풍경 한 가운데에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안락함과 안전함의 표식이라 할 수 있다.

“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벗기는 일련의 과정이, 안정 지향적인 삶을 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의 삶과 같음을 느꼈다.”

순수한 아이의 모습 같은 빈 캔버스에 테이프가 쌓이고 물감이 뒤덮이는 동안 수도 없이 흠집이 나며 시련을 겪게 되고 그렇게 할퀴고 간 자리가 사라지지 않고 인장처럼 남듯 인간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가만두지 못하고 거듭 무언가를 더해 본연의 모습을 가리면 가릴수록 순수한 모습을 잃고 점점 퇴색해 간다. 욕망이 쌓이고 순수한 모습이 흐려질 때 시련이 마음을 난도질하고 흠집이라는 훈장을 단다. 누구나 삶에서 겪는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스킹테이프로 무작위적 드로잉을 시도하는 그의 작업은 생채기투성이로 지나온 흔적을 애써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작업과 마주할수록 작가가 만든 작고 정직한 사각형 안에서 수많은 점의 집합으로 치환된 우리들 개개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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