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기술 검증...KB국민·신한은행, 블록체인 시사점은
연이은 기술 검증...KB국민·신한은행, 블록체인 시사점은
  • 고수아 기자
  • 승인 2021.12.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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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제도권 움직임 어려워
미리미리 대비만 하는 리딩뱅크들
전문가 "이유 있는 '강건너 불구경'"
KB국민은행 신관(왼쪽), 신한은행 본점. (사진=각 은행)
KB국민은행 신관(왼쪽), 신한은행 본점. (사진=각 은행)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이달과 지난달 각각 블록체인 관련 기술 검증 성과를 내는 등 선도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표 규제·관치 산업인 은행권에서 현재 국내 대표 은행들이 취하고 있는 행보가 미래의 '손 안의 은행'을 시사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가상자산 주무부처인 금융당국이 국가 비전을 위한 신산업 육성 차원보다는 진입 규제와 방치에만 집중하는 점은 혁신 의욕을 꺾을 수 있는 장애물로 거론되고 있다. 

■ 시그널 보내는 리딩뱅크들 찌릿찌릿...올해는 전자지갑·스테이블 코인 기술도 확보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가상자산, NFT(대체 불가능 토큰) 등 디지털 자산을 보관을 지원하는 '멀티에셋 디지털 지갑' 시험개발을 완료했다고 지난 21일 발표했다. 현재 금융권에서 블록체인 월렛 기술을 확보한 곳은 KB국민은행이 유일하다.

멀티에셋 디지털 지갑은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 퍼블릭 블록체인 클레이튼(Klaytn)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클레이튼은 올해 7월부터 진행 중인 한국은행의 CBDC 모의실험에서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발 업무는 CBDC 테스트 준비 차원으로 KB국민은행 내 혁신조직인 기술혁신플랫폼부가 수행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디지털 지갑 시험개발을 통해 확보한 블록체인 월렛 기술을 바탕으로 내년 한은의 CBDC 모의실험 연계 테스트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며 "기술혁신플랫폼부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차별화된 경쟁력을 구축 중이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최근 국내 금융권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스테이블 코인 기반 해외송금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을 완료했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기존의 화폐나 실물자산과 연동해 가격 안정성을 보장하는 디지털 화폐다. 법정화폐를 담보로 할 때에는 보통 1코인이 미국 1달러와 같도록 설계된다.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사가 민간기업이다. 대표적으로 홍콩 비트파이넥스 거래소가 미국 달러와 연동할 목적으로 만든 코인인 테더(Tether)가 있다. 미국 대형은행인 JP모건도 JPM코인 상용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해외송금 적용시 절차나 시간이 대폭 줄고 수수료 비용도 저렴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신한은행은 이번 기술 검증을 위해 헤데라 해시그래프와 지난 8월부터 3개월 동안 협업했다. 신한은행은 은행의 디지털전략챕터 내 블록체인셀이 블록체인 관련 기술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신한은행 내 대표적인 혁신조직으로 꼽힌다. 

헤데라 해시그래프 거버닝 카운슬에는 현재 구글, IBM, 보잉, 노무라, UCL(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도이치 텔레콤 등 25개 글로벌 유수 기업·기관이 참여 중이며 국내에서는 LG전자, 신한은행만 참여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은행도 멤버로 합류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해외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활용이 증가함에 따라 빠른 시장 대응을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 기술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첫 기술 검증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CBDC와 스테이블 코인 모두 실물 없이 전자적으로만 발행되는 디지털 화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CBDC는 중앙은행이 보증하므로 돈의 가치가 기존 지폐와 동일하고, 원화인 경우 사용처는 주로 우리나라에 한정되거나 환전이 필요한데, 상용화시 규제 리스크는 없을 전망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신속성과 확장성 부분 등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향후 상용화 여부는 대부분 주요 국가에서도 규제 여부가 관건으로 거론된다. 신한은행도 최근 테스트를 통해 기술검증은 완료를 했지만, 실제 서비스화는 충분한 법률 및 규제 검토 이후에 신중하게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두 은행은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기업과 지분투자 후 사업 협력을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 블록체인 기술기업 해치랩스와 한국디지털에셋(KODA)를 합작법인 형태로 설립했고 신한은행도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지분투자를 했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발표에 따르면 KODA와 KDAC은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수리를 마친 상태다. 다만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인 것은 아니다. 두 은행들은 각각 가상자산 사업자와 연계를 통해 공동 연구·개발(R&D) 등 사업 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 기업들은 생존·번영이 걸렸기 때문...격변의 금융시장 속 규제 환경은 여전히 열악

이 같은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기술 검증 행보는 국내 금융권에도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미국 대표은행인 JP모건이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을 본격화한 것보다 파장은 적어도 맥락은 같다고 해석된다. JP모건은 최근 암호화폐 전담부서를 꾸리고 100여명 직원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형중 고려대 특임 교수(한국핀테크학회장)는 "전자지갑 자체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이미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은행이 했다는 건 '손 안의 은행'이 될 수 있는 장치를 하나 마련했다는 점, 제도권 은행도 추후에는 본격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손 안의 은행은 현재 본점·지점에 기반한 뱅킹 서비스가 전자지갑을 기반으로 공급자 관점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수요자인 국민 실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김 교수는 현재 국내 가상자산 업계의 생활밀착형 서비스로는 다날핀테크가 운영 중인 페이코인을 하나의 예로 설명했다. 

이 서비스는 가상자산거래소에 원화를 입금해 페이코인(PCI)을 구매한 뒤 모바일 간편지갑 앱을 통해 지정 가맹점에서 실물 제품을 결제할 수 있다. 현재 가맹점 수는 7만여개, 가입자 수 200만명 이상 가운데 70만명 정도는 실제 결제를 하는 데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토스가 기존 은행들과 맞먹는 데 불과 4~5년 밖에 안 걸렸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은 현실세계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시장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쪽 시장이 급속히 커진다면 델리오, 클레이 스왑 등 새로운 사업자들이 1~2년 내 급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스(비바리퍼블리카) 기업가치는 내년 초 프리 IPO에서 최대 20조원에 이를 것이란 시장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약 8조원으로 평가됐던 기업가치가 반년 만에 150% 증가한 것이다. 델리오는 가상자산을 담보로 대출(렌딩) 서비스 등을 하고 있고 클레이스왑은 클레이트 기반 거래소를 운영 중이다. 

토스는 현재 제도권 금융사업만 영위하고 있다. 델리오, 클레이스왑은 다수 국민들에게 생소한 디파이(DeFi) 영역의 서비스를 영위한다. 디파이란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의 약자로 블록체인과 스마트 컨트랙트가 전통적인 금융기관의 신뢰 기반 금융중개기능을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통해 예대마진을 창출하고 신용창조를 한다. 반면 디파이 대출 분야에서는 스마트 컨트랙트가 활용돼 중개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 거래자가 어떻게 동작할지 알고 있는 프로그래밍 코드를 기반으로 해서다. 대출 실행과 상환, 담보 청산까지 전 과정이 프로그램 내에서 결정된다.  

전문가들은 디파이는 초기 단계이고 많은 도전 과제가 있지만 국내 금융권은 규제 여건이 미비해 은행은 물론 증권사, 자산운용사도 강건너 불구경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당국과 달리 목숨을 걸고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선제적인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한 것 외에는 모두 자유롭게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따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허가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를 따른다. 은행법에 적혀있는 업무만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금융당국이 혁신을 지원하는 제도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디파이 전세계 예치자산(TVL·Total Value Locked)은 작년 말 약 1조원에서 올해 말 현재 250조원을 돌파했다. 정부가 손 놓은 사이 국내 스타트업들은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상자산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원래도 금융이 우리나라가 빠른 편은 아니다. 크립토에 대한 투자는 2017년부터 전 세계에서 대중적으로 노출이 빠른 나라였는데 그걸 제도가 뒷받침을 못하니 미국, 싱가포르 등 선진국에 비하면 뒤처지고 글로벌 국가 경쟁에서도 밀려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김형중 교수는 "세상이 바뀌면 모든게 다 바뀐다. 지금 디지털카메라를 쓴다고 아날로그 필름을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규모가 작아지는 것"이라며 "사실 금융권이 용감하게 일을 저질러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나라가 세상을 선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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