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재운 나관중 삼국지 80%가 거짓말
소설가 이재운 나관중 삼국지 80%가 거짓말
  • 북데일리
  • 승인 2006.04.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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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는 8할이 거짓"

[인터뷰]<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쓴 소설가 이재운

“소설가 이재운은 마치 적의라도 품은 것 같이 10년 가까운 기간을 바쳐 <천년영웅 칭기즈칸> 전 8권을 탈고했다. 책을 쓰는 동안의 엄청난 수고는 그렇다 치고 이것을 쓰기 위한 공부와 취재까지를 생각할 때 작가는 거의 초인적이다. 야망의 실현으로서의 소설은 역사를 역사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과 문학을 영웅과 영웅의 무대로서의 세계 없이 하나의 단순 주제에만 충성을 다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재운은 큰일을 해냈다”

<천년영웅 칭기즈칸>(전8권. 해냄. 1998)의 저자 이재운(49)에게 보낸 고은 시인의 극찬이다. 시인은 ‘적의’라는 표현을 쓰며 소설가의 긴 집념에 박수를 보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 석사학위를 받고 소설가의 길에 뛰어든 이재운은 1991년 발표한 <소설 토정비결>(명성)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새 열하일기>(명지사. 1997) <소설 금강경>(서해문집. 1994) <천년영웅 칭기즈칸>(해냄. 1998) <당취>(명성. 2000) 등 많은 역사소설을 집필했다.

최근 발표한 <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현문미디어. 2006)에서 이재운은 “나관중의 삼국지는 8할이 거짓”이라는 문제적 발언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삼국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작한 작가를 만나 역사소설을 향한 불타는 집념의 연대기를 추적해봤다.

“장편집필은 재미있는 작업”

“<칭기즈칸>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적이 없기 때문에 몽골, 러시아, 프랑스 등 많은 국가의 자료를 구해 사비를 들여 번역했습니다. 자료를 수집한 다음 기존 연구 자료와 비교, 분석해 가며 새로운 차이점을 발견해 나갔죠. 의문을 벗겨 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했습니다”

작가는 장편 역사소설 집필을 “재미있다”고 표현했다.

8~10권으로 이뤄진 한편의 대하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100권 이상의 관련 책을 읽는다. <칭기츠칸> 집필 당시에는 수 백 권의 관련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방대한 자료 수집과정과 인물 창작 작업이 “마냥 즐겁다”는 이재운에게 소설가란 천직(天職)이다.

“역사소설을 쓰는 이유”

이재운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가장 알린 첫 작품은 <소설 토정비결>이다. 이후 역사소설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그는 ‘전문작가 부족’을 문단에 대한 아쉬움으로 꼽았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입니다. 최소 10년은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 분야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에서 전문작가들이 나와야 문학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이어 “대표작이 정해지면 고정 이미지 안에 갇힐 수 있다”는 한계점도 토로했다. 10만부 이상 팔린 작품들이 많은 데도 여전히 자신을 <소설 토정비결> 작가로만 기억하는 독자를 만날 때면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재운은 SF장르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

“나관중의 삼국지는 8할이 거짓입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 반기를 든 <태사룡의 거꾸로 읽는 삼국지>는 <칭기즈칸> 자료조사차 중국을 오가면서 구체화 됐다.

“조조의 고향에 방문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향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인들은 원소와 조조가 벌인 유명한 ‘관도대전’에조차 관심이 없습니다. 고향에서 조차 모를 정도로 조조에 대해 무관심한 중국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삼국지>라는 작품이 나왔는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고향에서도 기억해 주지 않는 조조를 영웅화 한 <삼국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원나라(몽골) 치하 열등민족이었던 중국인에게 <삼국지>는 희망이었으며, 유비의 저항 정신은 경외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 삼국지를 ‘몽골치하 중국인들의 독립항쟁서’로 해석한 중국인들의 생각에 “왜 우리까지 동의해야 하는가?”라는 반문을 갖게 됐다. 상하이 복단대학에서 유학한 후배가 가져온 삼국지와 관련된 수 권의 지도와 책은 집필에 불씨를 당겼다.

조조의 승리 비결을 ‘꾀와 기술’로 꼽은 나관중의 해석에도 동의 할 수 없었다.

“조조는 기마군을 이끌었습니다. 여포의 흉노와 강족(진시황의 부대, 북위, 수나라 당나라)의 기마군을 갖고 있었죠. 그런데 무슨 수로 이기겠습니까? 잔꾀나 기술로 이긴 것이 아니라 기마군으로 승리했다는 해석이 맞습니다”

반론은 계속됐다.

“중국인들은 한족정신을 고취하려고 이야기를 꾸며댔다지만 우리가 왜 그 생각에 동조하고 공감해야 합니까. 특히 청소년들이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는다면 모화사상(중국의 문물을 흠모하여 따르려는 사상)에 빠질 수도 있으니 <삼국지>는 해악에 가까운 책입니다”

작가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현실 도피 문학’으로 정의했다.

“요동치는 우리말, 한글을 탐구하자”

이재운은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작가다. <뜻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사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사전>(책이있는마을. 2005)을 만든 이유도 한글과 한자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제가 모르는 단어는 소설에 쓰지 않습니다. 한글은 물론 한자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의 가장 큰 한계점은 뜻이 불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을씨년’의 뜻은 뭘까? ‘어이없다’나 ‘트집 잡다’의 ‘어이’ ‘트집’은 무슨 뜻일까? 라는 궁금증을 늘 갖게 됩니다. 분명한 뜻을 알지 못하는 단어를 작품에 사용할 수없습니다“

작가는 한글을 바르게 써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후손들이 현대작품을 본다면 우리가 기미독립선언문 원문 보는 것 같은 혼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한글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창작 수단으로 사용되기에는 많은 언어적 약점도 갖고 있죠. 작가가 탐구 정신을 갖고 정확한 한글을 사용해야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어 한자와 영어를 한글의 비교 대상으로 꼽았다. 한자로 쓴 2000년 전 공자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300~400년 전 쓴 셰익스피어의 뜻도 파악 할 수 있는데 비해 우리말은 100여 년 전 글만 봐도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재운은 “모르는 게 있으면 끝까지 알아내고 말겠다”는 집념과 탐구정신으로 역사소설과 한글, 한자어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할 생각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

한나라의 국민성은 역사에 기초한다. 이재운은 중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가 중국인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멀리는 인도, 아랍을 배경으로 한 소설까지 계획 하고 있는 `통 큰` 소설가다.

작가는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좌표를 알고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 공간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조언을 전했다. 역사는 작가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역사를 이해하면 소명의식도 생깁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이재운은 글 쓰는 일을 ‘복’ 이라 칭했다.

“출퇴근도 안하는 자유로운 작가라는 직업을 허락해 준 독자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써 보답하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독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이재운. 쉽지 않은 역사 고증이 한없이 “재미있다”는 소설가에게 글쓰기란 조금의 고됨도 없는 신명나는 춤사위일 뿐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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