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토끼’보다 못한 자살예방 홍보물
‘자살토끼’보다 못한 자살예방 홍보물
  • 북데일리
  • 승인 2005.07.19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자살예방 홍보물이 오히려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지난 1일부터 서울지하철 2, 3호선 주요 환승역에 부착한 자살예방 홍보 스티커가 문제의 발단. 홍보 스티커는 고딕체로 적힌 ‘자살’과 함께 ‘자살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게시판에는 “자살이라는 큰 글씨가 오히려 자살을 부추긴다”, “금연 표시와 다를 바 없다”, “무성의하게 제작됐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네티즌 김후식 씨는 게시판 글을 통해 "지금처럼 권위적이고 단색인 디자인 대신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채가 들어간 디자인이라면 실질적으로 자살률을 낮춰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취지의 글을 올린 이지연 씨는 “귀중한 목숨을 살리는 스티커인데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자살` 이라는 두 글자에 교통 표지판 같은 `금지표시`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만들어진 모습이 정말 안타깝다”며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자살예방 스티커가 자살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자살 충동 스티커가 된 것. 오히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당신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처럼 긍정적인 문구가 낫다는 대안과 함께 “포스터나 유리벽도 필요하겠지만 확실한 대비책은 물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살기 좋은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아닐까요?”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한 관계자는 “자살예방 스티커는 일반인들에게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강하게 주기 위해 기획한 것”이라며 “처음하는 작업이라 그런지 디자인이나 의도들이 미숙했던 것 같고 현재 더 나은 내용으로 수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살예방 홍보 스티커가 여론의 빈축을 사고 있는 반면,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꾀를 쓰는 ‘자살토끼’는 환영을 받는 처지.

영국 만화가 앤디 라이리가 그린 카툰북 ‘자살토끼’(2004. 거름)는 백만스물두번쯤 자살을 시도한다. 살이 통통 오른 듯 보이는 자살토끼는 정말, 죽고 싶어 안달이 났다. 죽음 앞에 끔직하고 비참하기라도 해야 할 터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니 수상하다.

그렇다면 자살토끼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 죽음을 자초하는가. 파시스트 군인이 엄지를 접고 네 손가락을 붙여 ‘하이 히틀러’를 외치며 사열한다. 하지만 대열 한 쪽에서 우리의 자살토끼는 45도 각도로 승리의 V자를 하늘높이 긋는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 병사가 고국의 천황폐하 앞에 무릎을 꿇고 ‘덴노 하이끼 반자이’를 외치며 할복하려하자, 언제 나타났을까, 토끼는 병사의 등 뒤에 찰싹 붙어선 신성한 죽음 앞에 기꺼이 동참한다.

자살토끼 2편인 ‘돌아온 자살토끼’(2005. 거름)도 하는 짓은 오십보백보. 전기다리미 밑에 가만히 누워 `죽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로 시작되는 돌아온 자살토끼는 전편에 이어 일상생활의 세심한 관찰에서 오는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전기쇼크로 즉사하기를 바라듯, 자살토끼는 달리는 전철에 찰싹 붙어선 선로 위로 오줌을 지린다. 등산용 레펠에 묶인 갈고리를 머리에 얹혀 놓고선, 아래에서 힘껏 당겨주기만을 기다린다.

“죽고 싶다, 죽어야지, 죽는 게 낫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리숭하며 토실토실 귀엽게 생긴 토끼가 무언가를 전해줄지도…”(gks1614)

“자살토끼의 재롱을 넘어선 익살스런 자살 시도를 보면서 웃다보면, 그래, 사는 게 뭐 있어. 웃고 살자! 그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고양이엄마)

자살토끼가 죽기위해 안달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죽기위해 꾀를 쓰는 자살토끼가 기상천외한 방법과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고의로 만들어 놓고 스스럼없이 자살을 기도하는데, 다만 자살토끼의 끈질긴 노력이 담긴 카툰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괴롭고, 우울하고, 고독한 현대인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건 분명하다.

이쯤 되면 자살방지 예방포스터 대신 자살토끼의 한 장면을 지하철역에 붙여 놓는다면 어떨까. 호시탐탐 선로 위로 뛰어드는 이들에게 삶에 대한 강한 충동을 일으켜 주고, 자살토끼의 무모한 용기를 보며 자살에 대한 무겁고 엄숙한 마음을 방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명심하자. 자살은 ‘살자’의 반대임을.

(사진 = WHO(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40초당 1명 꼴로 자살을 한다. 2002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02년 집계로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18.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헝가리, 일본, 핀란드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www.suicideprevention.or.kr, 세계보건기구 www.who.int, 도서출판 거름 제공)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gmail.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