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원더랜드 쿠바` 누빈 열혈청년
자전거로 `원더랜드 쿠바` 누빈 열혈청년
  • 북데일리
  • 승인 2006.03.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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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쿠바 자전거일주 <원더랜드 여행기> 저자 이창수

2001년 국토 종단. 2002년 유럽여행. 2004년 일본 여행. 2005년 쿠바 여행. 평범한 대학 4학년 청년이 다닌 ‘질투 날 만한’ 여행경로다.

두 권의 여행책을 낸 저자와 TV 출연으로 유명세를 얻은 여행가라는 명함이 추가 되면 `어?`라는 반문, 모든 여행을 자전거로 일주했다는 사실까지 공개되면 `괴짜` 소리가 나올 만 하다.

주인공은 30일간의 쿠바 자전거 여행기를 담은 <원더랜드 여행기>(시공사. 2006)의 저자 이창수(26)씨. 여행이 끝난 후 1년여 만에 책이 출간 됐지만 이미 2005년 3월 KBS 월드넷을 통해 방송된 ‘창수의 쿠바 자전거 여행’으로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유명인이다.

시내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그는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제가 정크푸드 세대라 콜라만 마셔서 이런 건 잘 못 골라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스스로를 ‘정크푸드 세대’라고 자칭한 이 괴짜 여행가는 직원의 도움으로 자몽맛이 나는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실 수 있었다.

“나? 다른 사람보다 5분 늦게 생각해”

이창수씨는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특파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간 베를린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귀국 후 고교재학 중에는 밴드부에 가입해 기타를 쳤다. 밴드 공연 중 옷을 벗는 퍼포먼스를 펼쳐 ‘풍기문란’ 죄로 학교 측으로부터 꽤 큰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니 별종이라면 별종이다. 그의 별난 행보는 대학에서도 계속 됐다.

“‘서울대 3대 바보’ 라고 들어보셨어요? ‘서울대 정문에서 내리는 사람’ ‘서울대 축제 가는 사람’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3대 바보라더군요. 다른 건 모르겠는데 두 번째 , 학교축제가 재미없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이씨는 `서울대 축제는 왜 그렇게 재미없나`라는 의구심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대안문화를 만들었고 사람들 스스로 즐거운 무언가 해보자는 뜻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다. 순식간에 100명 이상이 모였고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이후 도서관 새벽에 장식하기’ 등 여러 종류의 대안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이씨의 얼굴에서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유별난 근성이 엿보였다.

이씨는 이 같은 근성으로 방송국, 기업가의 협찬과 지원을 받아 여행을 다녀 왔다.

“선배를 만나러 KBS에 갔다가 여행 매체 ‘월드넷’이 있길래 가서 제 소개를 했죠. ‘여행을 꼭 가고 싶고 도와줬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어요. 큰 기대 없이 연락처를 남겼는데 정말 연락이 왔더라구요”

넘치는 자신감으로 방송 출연까지 확답 받은 그는 내친 김에 학교 행사에 초청된 모 기업 회장 앞에서 “스폰서를 부탁드립니다”라고 꾸벅 절해 즉석에서 OK사인을 받아냈다.

“학생들도 많았고 발표 중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였는데 흔쾌히 허락 해주셔서 저도 놀랐어요”

방송국에서도 대중 앞에서도 생각 드러내기를 주저 않는 그는 “다른 사람보다 5분 늦게 생각해요. 일단 행동하고, 다음에 생각해요. 때론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다.

‘5분 늦게 생각하기’

작은 삶의 원칙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행동하고, 생각하는’ 도전 정신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 올렸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

“너는 고생을 몰라서 인생을 몰라”라는 말이 진저리 칠만큼 싫었다는 이씨. `좋은 대학`에 다니고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에서 독기같은 각오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당신들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데? 라고 묻고 싶었어요. 보이는 내 모습이 그렇다는 건데. 그 편견에 굴복하긴 정말 싫었어요. 좋다. 고생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자전거 여행을 선택했죠. 돈도 별로 안 들어 좋았고”

굳은 결의로 시작한 자전거 여행은 자신과 싸움이었다. 작은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온 땅을 누비자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에만 살았고 독일에서도 수도에만 있던 그에게 서울을 벗어난 공간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자전거로 국토를 횡단 한 후 입대 3개월 전 유럽여행을 결심했다.

“제대하면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복학생’이 되는구나. 과방에 거만하게 앉아 인생을 논하고 ‘넌 아직 어려’라며 훈계 하던 혐오스런 복학생이 된다. 입대 날짜가 다가오자 그런 두려움에 휩싸였어요. 젊음도 있을 때 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짐을 꾸리기 시작 했죠”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에 `왜, 뭐가?`라는 반문을 달고, 화제와 이슈를 보며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 할 수 있어? 다른 뭔가 더 중요한 게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던 그에게 복학생이 된다는 사실은 공포감에 가까웠다.

두려움 반 모험심 반으로 떠난 유럽여행. 자전거를 분해해 상자에 담고 여행지에 도착한 후 조립해 타고 다니며 2달간 유럽을 누볐다. 여행기는 군대에서 쓰기 시작했다. 상병 때 탈고 했고 병장 때 책을 출간했다. 2만부가 넘게 팔린 그 책의 이름은 <나쁜 여행>(아이원. 2005)이다.

"왜 쿠바 였나?“

30일 여행 중 8일을 KBS 카메라와 동행 했던 쿠바 여행. 그는 쿠바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000만 해외여행자 중 1년에 쿠바를 찾는 사람은 80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요. 가장 먼 나라가 어디일까 생각 하다 거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도 먼 쿠바를 떠올렸어요. ‘정말 다른 나라를 가보자’ 라는 생각이었죠”

도착하기 전 가졌던 쿠바의 이미지와 실제의 쿠바는 달랐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찾는 아바나 항구는 춤, 시가, 술, 여흥으로 넘쳐나는 곳이지만 아바나가 쿠바의 모든 이미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쿠바의 진짜 이미지는 알려지지 않은 곳곳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이씨는 “아바나에 머물면 자신이 보고 싶어 했던 이미지만 보겠지만 그 밖의 장소들을 찾아다니면 쿠바의 낯선 이미지를 찾는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어요”라고 전했다.

30일간의 여행 루트를 직접 짠 그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하바나(Hanaba)공항 - 유럽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바라데로(Varadero) - 체 게바라(Che Guevara)가 마지막으로 혁명전쟁에서 승리했던 산타 클라라(Santa clara) - 또 다른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Jose Marti)와 체 게바라(Che Guevara)가 스페인에 항거했던 바야모(Bayamo) - 산티아고(Santiago) -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7월27일 혁명이후 배를 타고 처음 도착했던 곳. 카보크루즈(Cabo Cruz)’가 체 게바라의 혁명 흔적을 좇아 만든 일명 ‘체 게바라 루트’다.

이씨는 여행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자전거 타기로 꼽았다. 전 세계를 자전거로 누비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자전거 타는 일이 가장 괴로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릴 때면 스릴 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죠”

자신감 넘치는 괴짜 여행가에게도 두려웠던 순간은 있었다.

“쿠바의 아이스크림 잊을 수 없어요”

이씨가 꼽은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산티아고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2시간을 기다려야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는 이 가게 앞에는 늘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이 목격 된다.

고급스런 분위기의 가게에 앉아 우리 돈으로 200원, 비싸게는 400원 밖에 하지 않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기 위해 2시간을 기꺼이 투자하는 쿠바인들에게서 한국인의 조급증과 다른 낭만과 여유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만들 수 있는 아이스크림 갯수까지 제한하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 그 ‘억압’의 공간에서 이씨가 목격한 것은 불행이 아닌 평화로운 쿠바인들의 표정이었다.

“노숙자로 보이는 한 아저씨를 봤어요. 20원어치 적은 양이었지만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표정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어요. 한국에서 보던 노숙자들의 어둡고 비참한 표정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당황하기까지 했죠. 무엇이 그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그저 20원어치 아이스크림일 뿐인데. 다른 건, 물질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었어요. 단 3분간의 행복감일지라도 그것을 충만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이 쿠바인에요”

이씨의 말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줄을 선 사람들 역시 누구하나 표정을 찡그리거나 짜증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리저리 흩어져 앉아 기다리거나 왔다 갔다 해도 새치기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아이스크림가게에 이어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카보크루즈(Cabo Cruz)에서 보낸 어느 주말. 여행을 마치고 호텔에 묵던 중 음악 소리가 나 밖으로 나가보니 사람들 몇몇이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전문 연주자들은 아니었지만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여유로운 선율이었다. 쿠바인들은 토요일 만큼은 가난한 이든 부자든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자유를 만끽한다고 한다.

“자신만의 여행법이 없다면 무의미”

이씨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환상을 버리세요`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된다는 사실은 낭만 보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먼저 밀려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8일간 함께 했던 KBS PD가 떠나던 날 ‘또다시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을 절실히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타일’이다.

“요즘은 블로그나 커뮤니티가 활성화 돼서 웬만한 장소는 사진이나 자료가 다 올라와요. 예를 들어 파리를 다녀 온 사람들이 가본 곳은 거의 비슷하죠.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센 강 등 유명 여행지말이에요.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요? ‘멋있다, 낭만적이다, 황홀하다’ 이 역시 비슷하죠. 누구나 하는 방식으로 여행했기 때문이에요. 보고, 사진 찍고,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기만 하는 무의미한 여행이라면 저는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천편일률적인 루트를 훑는 여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신만의 여행법이 없다면 세계 여행을 한다 해도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무의미한 여행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남들이 결코 느끼지 못하는 것 하나. 그 하나를 얻기 위해 때로는 어려운 길도 선택할 수 있는 도전과 용기. 그것이 진짜 여행을 위해 필요한 필수 요소다.

그는 끊임없이 남들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해 왔다. 가장 싫어하는 말이 `인생 뭐 있나`라는 말일 정도로 `대충 사는 삶`을 경멸한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다시 휴학을 결정하고 여행을 계획 한 이유도 누군가처럼 `그저, 그렇게 살게 될까봐`이다. 조금 더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 지금의 바람이다.

“가장 가고 싶은 나라 북한”

이씨의 다음 여행지는 미국이지만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북한이다.

“정말 가보고 싶다”는 말을 거듭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서른 전에 자전거로 북한을 달려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글 쓰는데 자신은 없지만 쓰는 것이 좋아서 두 권의 여행책을 낸 이씨는 지난 11일, 12일 열린 ‘게릴라 사인회’에 몰려든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 솔직히 놀랐단다.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지도 않았고 서점 내에 정확한 장소를 명시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와주셨습니다.”

4월 1일 예정된 팬 사인회에서는 ‘플러스 알파’를 보여 준다고 하니 여행 청년 창수의 팬이라면 기대해도 좋겠다. <원더랜드 여행기>의 저자 이창수씨의 사인회는 4월1일 오후 3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의 페이퍼(http://paper.cyworld.com/badtrip)와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badtrip)에는 “자전거로 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배낭여행과는 다른 차원의 여행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삶에 지친, 꿈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다`고 외치는 사이버 공간의 놀라운 히트수는 ‘원더랜드’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다.

‘원더랜드’로 떠나길 원하는 이들에게 ‘다른’ 무엇 하나를 던지기 위해 창수는 오늘도 다시, 달린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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