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남주 시인 부인 “여전히 착잡하다”
故김남주 시인 부인 “여전히 착잡하다”
  • 북데일리
  • 승인 2006.03.1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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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투쟁 속에 동지 모아 / 셋이라면 더욱 좋고 / 둘이라도 떨어져 / 가지 말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앞에 가며 너 뒤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 뒤에 남아 너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 열이면 열사람 천이면 천사람 어깨동무하고 가자 /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고 /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 해 떨어져 어두운 길 /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 가시밭길 험한 길 누군가는 가야할 길 /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故 김남주(金南柱, 1946 ~ 1994) 시인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 1998)에 실린 표제작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다. 가수 안치환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의 시인 김남주 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관련자 29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드디어 인정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14일 제162차 심의회에서 심의 신청자 33명 가운데 29명의 전력을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항거한 행위로 판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남민전은 1976년 2월 반유신 민주화와 반제 민족해방 운동을 목표로 조직된 비밀단체. 1979년 84명이 검거되면서 유신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남민전 관련자 대부분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사형 무기징역 등 대부분 중형을 선고받았다.

김남주는 1978년 한국민주투쟁위원회에 가입해 남민전 기관지인 ‘민중의 소리’에 저항시를 게재하고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제작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혐의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이 선고됐다.

MBC 표준FM(95.9MHz)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오후6시~8시)은 14일 김남주 시인의 부인 박광숙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남주 시인의 민주화 운동자 인정을 진심으로 축하 한다”는 김미화의 말에 박씨는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착잡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김남주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만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남민전 운동에 참여 했던 박씨는 “유신을 합리화 한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가장 괴로웠다. 솔직하지 못했던 내 모습에 많이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교사 출신의 박씨는 남민전 활동으로 인해 교사직을 박탈당했다 복직해 현재 인천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시인이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 무얼 하고 계셨을까” 라는 질문에 박씨는 “글을 쓰거나 사회를 위해 일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1991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상, 1992년 제6회 단재 문학상 수상, 1993년 윤상원 문학상을 수상한 김남주 시인은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한편 남민전 사건 연루자 중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홍세화 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은 아직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신청을 하지 않았고 차성환 부산민주공원 관장에 대해서는 심의가 진행 중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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