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애 큰나출판 대표 눈물의 쏘주잔
최명애 큰나출판 대표 눈물의 쏘주잔
  • 북데일리
  • 승인 2006.02.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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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뒷담화] <쏘주 한잔 합시다> 큰나출판사 최명애 대표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 2000)이후 5년 만에 유용주 시인이 들고 온 산문집 <쏘주 한잔 합시다>(큰나. 2005)의 표제는 큰나출판사 최명애(47) 대표의 ‘심장’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20여년간 몸담았던 패션업을 그만두고 시집전문 출판사인 ‘시와시학사’를 인수 했을 때 모두들 `미쳤다`고 했다. `돈 안 되는 시는 뭐하러 하느냐`며 만류했다.

그러나 옷 만들어 번 돈이 고스란히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아무데서도 내주지 않는 시인의 금쪽같은 문장을 발견하면 시집을 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쏘주 한잔 합시다... 쏘주 한잔 합시다...’라는 말이 가슴 안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단다.

`눈물은 떨어져도 `쏘주잔`은 올라간다`는 누군가의 말에 무릎을 치며 ‘쏘주 한잔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가진 것은 없는 사람들의 등 언저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책을 언젠가는 꼭 만드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 생각난 작가는 시인 유용주 밖에 없었다.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있는 큰나출판사에서 10만부 베스트셀러 <쏘주나 한잔 합시다>를 만든 최 대표를 만났다. 소주 한잔 할 분위기였지만 환한 대낮이라 녹차를 `쏘주`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난 쏘주 아니면 안돼’

어머니가 쓰러지고 학교를 그만 둔 유용주 시인은 빵 공장, 구두닦이, 신문 배달, 중국집 배달, 야학과 검정고시로 인생을 떠돌며 살았다.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에 담은 고단했던 시절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선생님, 선생님 밖에 쓸 사람이 없어요”

최 대표가가 유용주 시인에게 ‘쏘주 한잔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원고 청탁하며 건넸던 말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으니, 이 책만은 당신이 써줘야 한다”며 무작정 매달렸다.

털털한 유용주 시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니 시간이 오래 지난 어느 날, 술자리에서 “산문하나 썼는데...” 라며 운을 뗐다. 최 대표는 대뜸 “됐어요. 난 쏘주 아니면 안돼” 라고 되받아 쳤다. 뒤돌아서는 시인의 말이 최 대표의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게...다 술 얘기거든...”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읽기조차 아까워 원고를 한번에 읽지 않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조금씩 조금씩 며칠에 나눠 읽었다. 몇 년 동안의 꿈이 이루어지는 벅찬 순간이었다.

책 안에 든 것이 너무 뜨겁고 진실 돼, 글의 차례 조차 건드리지 않고 ‘천연’ 그대로 세상에 내놨다. 베스트셀러 <쏘주 한잔 합시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유용주씨의 글은 죽비소리 같아요. 어느 순간 환청처럼 들리고, 책을 덮은 후에도 문장이 잊혀지질 않죠. 그것이 모두 그가 겪었던 실제 삶에서 건져 올린 날것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최 대표는 유용주 시인을 일컬어 ‘항상 한결 같은 사람’ 이라고 말한다.

‘노동자 시인’ 유용주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MBC 느낌표’를 통해 널리 알려진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에도 담겨 있듯 밑바닥 삶을 온몸으로 겪었다. 막노동판에서 ‘먹고 살아야 했지만’ 글을 쓰고 싶었다. 199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목수`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이 됐다. 누구도 유용주의 글을 흉내 낼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삶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쏘주 한잔 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부탁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소주는 서민의 술이자 한국인의 술이다. 눈물을 안주로 소주를 마셔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세상의 쓴맛를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목은, 주인을 참 잘 만났다.

‘가방 들고 전국을 발로 뛰었다’

<쏘주 한잔 합시다>를 내고 큰나출판사 전 직원은 시인과 함께 전국을 돌았다. 작은 도시의 소형 서점이라도 시인의 사인회를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고 달려간 정성이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다. 주말과 휴일도 없었다. 시인과 대표, 영업부와 편집부 직원 모두 함께 움직였다. 단 서너명의 독자가 모인 곳이라도 시인과 `큰나` 사람들은 찾아갔다.

전국을 발로 뛴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최 대표는 지금도 이틀에 한번 시내 대형서점에 들른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독자들의 현장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서점방문은 필수`라고 강조한다.

<쏘주 한잔 합시다>의 성공에는 책을 읽고 순수하게 ‘반해’ 홍보를 자처하고 나선 많은 독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 독자는 유용주 시인의 글에 감동 받아 무료로 옥외광고를 해준다고 나섰고 언론은 앞 다퉈 노동자 시인의 귀환을 대서특필했다.

“전작에서 진흙탕 삶의 현장을 녹여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한국인의 가난이 흘리는 눈물을 넉넉히 담아낸 관조가 발견됐다”

신문 북섹션과 방송 뉴스도 책을 소개했다. 책의 함량을 생각한다면 이해할만한 반응이었지만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 감동을 받았다. 최 대표는 다시 한번 유용주 시인의 글이 가진 무서운 힘을 느꼈다.

‘TV와 신문에 모든 트렌드가 있죠’

최 대표의 기획노하우는 TV와 신문에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5개 신문을 읽는다. 세상을 읽는 눈은 신문에서 시작된다. TV시청도 빼먹지 않는다. 드라마는 반드시 챙겨본다.

“TV 드라마 안에는 가구, 소품, 배경, 주인공의 헤어스타일, 패션, 화장법, 대화법 등 모든 트렌드가 담겨 있죠. 저녁준비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도 큰 소리로 드라마를 틀어 놓죠. 트렌드를 읽지 못하면 책을 만들 수 없어요. 오감을 열어 놓고 살아야 해요”

얼마 전 DMB폰도 마련했다. 이동하는 시간이 아까워 그 시간에라도 TV를 보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음악한번 듣고 책 한번 읽지 못하는 바쁜 일상이다. 모든 보기와 듣기는 책 만드는데 온전히 쓰이니 진정한 의미의 여가는 아니다. 오감을 열어 놓고 세상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메모하다 보니 세상의 흐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언젠가 밝혀질 진실, 한점 부끄럼 없어’

출판동네서 자신감과 추진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 대표는 요즘 우울하다. `사재기 파문`의 당사자 중 한사람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인회의가 발표한 사재기 도서 5권 중 <쏘주 한잔 합시다>가 포함된 것이다.

최 대표는 언론을 통해 ‘진실은 밝혀 질 것’이라고 즉시 반박하고 나섰다. “진흙탕을 뒹굴며 가난을 속옷 삼아 살아온 시인의 절절한 문장에 ‘오욕’을 덧씌워 준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질 듯 합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또 “판매와 마케팅 과정에 있어 한점 부끄러움도 없다”라며 "책을 알리는데 도움을 준 이들이 대부분 ‘자발적’ 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토로했다.

‘시와시학사’를 6년간 운영해 오며 단 한순간도 돈을 위해 시집을 내지 않았고 2년 전 큰나출판사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심 하나로 책을 만들어 온 최 대표에게 이번 사건은 큰 상처가 됐다.

최 대표는 좋은 책을 열심히 만드는 것만이 독자와 저자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다짐했다. 가난한 엄마와 아빠도 아이를 위해 선물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으로 만든 ‘생각하는 크레파스’ 아동도서 시리즈의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고 최근 <은근살짝>(큰나. 2006)이라는 제목으로 유용주 시인의 시집을 펴냈다. 하반기에는 유 시인의 소설도 낼 계획이다.

`당신의 본래 모습인 큰나를 찾아 줍니다`라는 출판사 모토에 심어진 진심이 큰나의 뿌리가 되어 많은 양서의 가지를 낼 것으로 믿는다. `최명애`는 죽비소리 같은 유용주의 시 한 줄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의리파 출판인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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