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가로 변신한 양공주` 기막힌 사연
`운동가로 변신한 양공주` 기막힌 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5.07.1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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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을 통해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 있다. 기지촌 여성 운동가 김연자(63)씨의 자전적 에세이집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 분 전까지 악을 쓰다’ 그 것.

‘아메리카...’은 젊은 시절 기지촌 여성인 소위 ‘양공주’로 지냈던 김씨가 기지촌 운동가로 변해가는 과정과 한국의 기지촌 역사를 되짚은 책이다. 이와 관련 10일 MBC ‘시사매거진2580’은 김씨를 통해 기지촌 역사를 재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에 따르면 김씨는 20살이 되던 1962년, 돈을 벌기 위해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책 외판원, 구두닦이, 버스 차장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그는 알몸 검사를 하던 버스 회사에 항의하다 거리로 내몰렸다. 결국 그는 동두천 기지촌으로 흘러들어왔다. 당시 인생을 포기했다는 김씨는 그 상황에서도 돈을 벌어 고향에 가서 어머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생각만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김씨의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아 허물어졌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일할 수 없었던 그는 매일 술과 약에 의지해야만 했다. 심지어 미군들이 훈련 나갈 땐 담요 한 장을 들고 군인들을 따라나서기도 했다. 미군들은 그런 기지촌 여성들을 ‘담요부대’라며 멸시했다. 그 후 김씨는 평택에서 기지촌 여성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다 쫓겨나 군산에 있는 기지촌 ‘아메리카 타운’으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 김씨는 기지촌의 어이없는 현실을 목격했다. 1977년 한 달 새 두 여성이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됐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없었다. 미군 앞에서 시위를 했지만 기지촌 여성들은 조롱받거나 귀찮은 존재로 여겨져 쫓겨나기 일쑤였다. 김씨는 그 후 본격적으로 기지촌 여성 운동에 뛰어들었다.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던 교회 대신 김씨는 기지촌이 내려다보이는 아메리카 부근 언덕 위에 천막 교회를 세웠다. ‘기지촌은 지옥, 여기는 천국’이라며 천막 교회는 기지촌 여성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이 후 김씨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92년 평택에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아들을 위한 선교원을 세우고 기지촌 여성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 여성 운동가는 “한국 지역 운동사와 한미관계가 한 개인의 삶에 체현됐다”며 김씨를 기지촌 역사의 산증인으로 평가했다.

현재 김씨는 혼자서 기지촌 여성들의 자활을 위해 월세방에서 한과공장을 준비중이라고 방송은 밝혔다. 그 공장의 이름은 ‘희망나눔센터’. 김씨는 모든 기지촌 여성들이 과거의 절망을 딛고 희망을 갖고 사회에 떳떳하게 나가보자는 생각으로 이런 이름을 짓게 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책 서문에서 “정열적으로 열심히 산 여자, 죽는 순간 오분 전까지 악을 쓰고 열변을 토했던 여자 여기 묻히다”란 비문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이제 평생을 외쳐왔던 그의 ‘악’과 ‘열변’에 우리가 귀 기울여 줄 차례가 아닐까.[TV리포트 진정근 기자] gagora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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