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다보면 어느덧 '시'가 되고
제주에 살다보면 어느덧 '시'가 되고
  • 유현수 시민기자
  • 승인 2012.09.07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심한 도시인들의 놀멍 살멍 제주 이민 관찰기

[북데일리] 연금 받는 돈 많은 은퇴자들에게는 제주가 파라다이스다. 약간의 돈만 있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육·해·공의 먹을 것과 즐길 것을 만끽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연일 폭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수도권의 부동산과 달리, 제주는 아직도 불황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젊은 세대에게 제주 이민은 어떤 것일까?

제주 이민의 꿈을 간직한 두 명의 젊은 방송작가가 재미있는 제주 정착 관찰기를 출간하였다. <제주에 살어리랏다>(2012, 청어람미디어)가 그것이다.

이 책의 소제목은 ‘소심한 도시인들의 놀멍 살멍 제주 이민 관찰기’인데, 제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접근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제주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자면 ‘소심해서도, 놀아서도, 관찰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제주에 오려면 동기가 어정쩡해서는 안 된다. 확고한 결심과 목적이 분명한 것이 좋다.

도시에 살다가 제주마을 이장이 된 금등리 고춘희 씨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엔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 그런데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제주여자들은 강해.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온 습성이 남아 있어서. 하지만 그런 반면 대우를 너무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그런 걸 좀 바꾸고 싶었지.” P100

하지만 글은 TV방송을 보는 듯 퍽 재미있었다. 특히 제주 정착에 필요한 일급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어 꼭 참고할만하다. ‘제주도의 교육환경, 집구하는 현실적인 방법들, 농사 VS 장사, 제주 살림과 이사, 농가주택 구입 체크리스트’ 등이다.

저자의 집필 동기도 알아두면 좋겠다.

“사실 방송 일을 하면서 다양한 부류를 만나왔지만 진정한 보헤미안 라이프로 사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돈이나 명예, 인기나 권력을 내세우는 이들을 만난 뒤에는 늘 허망함이 남았다. 틀에 박힌 사람들의 굳어진 마인드는 내게 아무런 감동도 위로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진정 내켜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 내가 제주에 가려는 이유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P81

마지막으로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체험한 부분이 있어 소개해 본다.

“우리 동네에는 관광지도 있고 나름 볼거리도 꽤 많아서 걷는 풍경이 지루하지 않았다. (...) 산책코스는 현대미술관에서 시작한다. 해질 무렵에 거의 매일 다녔던 길이다. 집에서 나와 왼쪽으로 쭉 내려가면 700m 앞에 현대미술관이 있다. 현대미술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예술인마을은 마치 화보집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림 같은 집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풍경을 구경하고 (...) 1시간 산책코스는 저지오름을 오르는 길이다.” P283~P284

이 책에서 인터뷰한 분들의 정착 노하우가 왕도라고 볼 수는 없다. 개인마다 사정도 다르고 운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터뷰는 인터뷰다. 그리고 365일 중에 60일 살아보았다고 제주의 삶을 제대로 소개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1년 살아보면 이런 저런 느낌과 체험들로 가득 차서 책으로 써 낼까 싶은 욕심도 난다. 하지만 몇 년 살아보면 점차 할 말이 없어지는 걸 알게 된다. 글은 점차 시가 되고 결국은 침묵하게 된다. 말없이 소라만 건네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해녀처럼.

난 감히 그게 제주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