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사에 대한 새 시각
중국철학사에 대한 새 시각
  • 김현태기자
  • 승인 2012.02.08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자’와 ‘디아스포라’라는 독특한 개념

[북데일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보여주듯 철학은 회의의 학문이다. <철학사의 전환>(글항아리. 2012)는 중국이란 나라를 규정하는 단어의 회의에서 시작한다. 즉 중국이라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유구한 역사와 자족적 문화라는 선입견을 근본적으로 되짚는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중국철학사를 ‘타자와 디아스포라에 내몰린 문화 정체성의 끊임없는 재구축의 여정’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본다.

꼼꼼히 읽어보면 이해가 간다. 타자는 중국적인 것과 이질적 존재를 가리킨다. 인종으로는 삼대의 삼묘(三苗), 서주의 융족(戎族), 동주의 동이(東夷), 한 제국의 흉노(匈奴), 남북시대의 오호(五胡), 송의 탕구트족, 거란족과 여진족, 원의 몽골족, 청의 만주족, 근대의 양이(洋夷) 등을 가리킨다. 제도와 가치로는 이질적인 결혼과 풍속 그리고 복식, 국가와 관직 그리고 물질적 가치 등의 외물, 과학과 민주주의 등을 가리킨다.

디아스포라(유배)는 중국인이 문화의 발생지라는 중원에서 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쫓겨났던 경험을 말한다. 삼대에는 이민족과 잡거했고, 서주가 동주로 바뀌면서 주족은 호경을 떠나서 낙양으로 옮겨가야 했고, 세력의 강약에 따라 한 제국과 흉노족은 땅과 사람을 내주었고, 위진 이후 한족은 중원을 내주고 강남으로 옮겨 살아야 했고, 원청 제국에서 한족은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고, 근대에는 동남아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런 배경은 문화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온다. 사서오경으로 텍스트화되고, 삼대로 역사화되고, 화로 종족화되고, 도로 이념화되고, 리로 실체화되고, 성으로 개별화되고, 군자와 동심으로 주체화되었다. 저자의 시각은 이렇다.

‘중국인은 삼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타자와 대결하면서 자립을 유지하거나 유배 또는 식민의 상황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시대정신을 재구축해왔다.’

현재 중국은 문화 정체성을 과도하게 실체화하여 애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이루어진 중화주의로 결정화시키고 있다. 제자백가와 성리학과 같은 전근대의 문화 정체성은 다시 역외로 확산되고 동아시아 문화의 동일성으로 상승할 정도로 보편성을 획득했지만 중화주의와 같은 근현대의 문화 정체성은 동아시아 문화로 확산되지 못하고 갈등과 대립을 유발한 채 타자를 흡수하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인은 ‘창문 없는 방’에 산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늘 뒤섞여 있던 곳’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문화 정체성을 시대마다 달리 구축하는 작업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시대마다 타자의 정체와 디아스포라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문화 정체성의 재구축도 늘 다른 언어로 지어진 다른 구조를 지었던 것이다. 따라서 철학사는 연속과 불연속(단절)이 뒤섞이면서 빚어진 무지개 빛깔을 아로새기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제목 <철학사의 전환>은 ‘철학사의 터닝포인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철학사는 선배(부모)들이 길을 밝히고 후배(자식)들이 처음에 그 빛을 쬐다가 나중에 그것을 뒤집는 사상의 결투장이다. 짧게 말해서 철학사는 부친 살해의 역사이다. 이 책은 ‘타자’와 ‘디아스포라’라는 중국 사상사 특유의 발생동력을 중심에 놓고 고대에서 근대까지 새로운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