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 알몸으로 욕먹던 시절
김병만 알몸으로 욕먹던 시절
  • 박성환 기자
  • 승인 2011.08.18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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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달인 김병만 자전에세이


[북데일리] 양쪽 발목이 부러진 채로 3년간 덤블링을 하고 공연을 했다. 단순히 삔 줄 알았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부러진 뼈를 수술을 통해 제거해야 한단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수술을 하면 3개월을 쉬어야 한다. 그렇게 오래 공연을 못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최고의 자리에 선 지금도 부러진 뼛조각이 그대로 있다. 괜찮았다가 어쩔 땐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이 시대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병만 이야기다. 그의 자전에세이 <김병만 달인정신>(2011.실크로드)가 나왔다. 항상 웃음을 주는 그가 저런 고통을 가지고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위의 일은 그에게 너무나 일상적인 고통이자 노력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부러진 발목으로 키스앤 크라이에 참가한다. 공중돌기를 하다가 제대로 착지 하지 못해 발목 인대를 다쳤다. 녹화 도중 서 있지 못하고 잠깐 무릎을 꿇었다. 많은 사람이 걱정해주었다. 김연아 선수도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눈물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연기학원을 다녔다. 원장이 3개월간 가르쳐 놓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넌 안 돼’였다. 외모 때문이었다. 온갖 고생을 참아가며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를 했는데 원장의 졸업식 한 마디였다. 처음엔 실제로 그에게 기회가 없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소용없었다. 처량한 생각이 들려 올 때마다 소리를 질러 물리쳤다. ‘아니, 난 될 거야. 나는 해낸다.’

그 뒤 힘든 연극생활이 이어졌다. 그가 알려주는 연극이 끝난 뒤의 무대. 한 노랫말처럼 정적과 고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먼지가 있다. 그는 돈이 없어 한동안 극장에서 살았다. 청소가 끝난 뒤에도 극장을 가득 메운 먼지는 사라질 줄 몰랐다. 어떻게 할 수 없어 불을 끄고 그냥 잤다. 몇 달 동안 이런 생활을 한 결과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씻을 곳은 없고 목욕은 하고 싶었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들켰다. ‘여기서 뭐하는 거냐!’ 라는 말에 도저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알몸으로 호통치는 사람을 등지고 10분 동안 욕을 먹었다. 그 때 건물 관리인의 경멸스럽다는 눈빛을 잊지 못한다. 문을 쾅 닫고 나가면서 ‘에이, 그지 같은..’ 이란 말에 눈물이 흘렀다.

백제 예술대 연극영화과를 시작으로 서울예술전문대는 6번, MBC 공채 개그맨 오디션 4번, KBS는 3번을 떨어졌다.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 KBS 17기 공채 개그맨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처절하게 기회를 얻었다. 다리가 부러져도 참고 공연을 한 행동이 이해가 간다. 이해만 가고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밥 먹을 돈이 없어서 라면을 퉁퉁 불려서 먹었다. 양이 많아져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좁은 옥탑방에 갈 곳이 없는 후배를 불렀다. 이 옥탑방은 ‘개그 명당' 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한 명이 합격하면 나가고 또 다른 후배가 들어와서 합격하고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따뜻한 남자다. 자신도 어려우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던 건 그가 더 힘들어 봤기 때문일 것이다.

‘풍자할 땐 태우지 말고 그슬려라.’ 그의 개그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그의 개그에는 갈등, 칭찬, 비난이 있다. 하지만 막장으론 흐르지 않는다. 은근하게 웃긴다. 말도 은근하고 몸짓도 은근하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동을 준다.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둥그렇게 만들었다가 그 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한다. 그의 삶이 연기에 녹아나기 때문이 아닐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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