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아버지의 정원>(루비박스,2010)은 어느 미술사가가 들려주는 그림 에세이이다. 미술사학 박사로서 저자의 지식보다, 관객으로서 그림을 감상하는 시각과 이야기를 더 많이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동안의 미술서가 제시하였던 것과 다른 명화감상에 대한 시각과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예술가와 그림에 대한 해석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관객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림을 봐야하는 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책에 소개된 다비트 바일리의 <바니타스 상징이 있는 자화상> 부분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자상하던 아버지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후의 살기 있는 눈과 긴장된 어깨를 회상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한다. 이어 이 경험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그린 <바니타스 상징이 있는 자화상>을 바라본다.
바니타스(Vanitas)란 라틴어로 '헛되도다'라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 한시성을 의미한다. 시간의 덧없음, 인생의 무상함의 내용을 담은 그림이 바니타스다.
<바니타스 상징이 있는 자화상>는 밑에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왼쪽에는 화가의 자화상이, 오른쪽 테이블 위에는 불 꺼진 촛대, 두개골, 모래시계, 깨지시 쉬운 유리잔, 사라진 고대 문명의 유물인 석상, 잠시 후면 시들어버릴 꽃, 곧 터져 사라질 책상 위에 떠 있는 세 개의 비누방울 등 온통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인생무상의 메시지를 가장 강력하게 전하고 있는 것은 그림 속의 젊은 화가가 들고 있는 자신의 노년을 그린 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를 그렸을 당시 화가의 나이가 67세였으니 '그림의 그림'속에 있는 늙은이가 이 당시 화가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노년과 젊은 시절의 자화상을 대비시킴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책은 절규, 생 라자르 역 등의 서양화부터 파적도, 호박꽃과 메뚜기 등의 동양화 까지 폭 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명화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고 그 경험들은 그림을 감상하는 데 하나의 창이 된다.
우리에게는 미술교과서의 해석만이 그림을 보는 유일한 창이었다. 자신의 경험과 시선으로 그림을 해석하는 저자는 스스로 그림을 볼 수 없었던 많은 대중들에게 그림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 저자는 그림을 감상하는 데 작가의 의도와 미술 형식이 아닌 그 몫을 감상자에게 돌리고 있다.
저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내용에 담아서 그런 것일 까? 모든 그림들이 나에게도 개인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명화는 더 이상 다가가기 힘든 예술 작품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된다. 예술은 우리 모두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