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나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나요?
  • 이이나 시민기자
  • 승인 2008.08.02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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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죽이러 갑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죽다’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죽을 만큼 사랑해”, “너무 행복해서 죽겠어”, “피곤해 죽겠어” 와 같이 어떤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를 묘사할 때 ‘죽다’라는 말이 어김없이 나온다. 심지어는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매력적인 이성을 볼 때도 ‘죽인다’라는 말을 쓰는 요즘이다.  하지만 ‘죽다’라는 단어가 갖는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날 모함하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 혹은 자신과 말다툼하는 친구, 심지어는 가족에게까지도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도 시선을 잡아 당길 것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죽이러 갑니다>(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media 2.0, 2007)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이 책은 도대체 누구를 죽이러 가 길래 이렇게 선언하듯 말하고 있는 것일까. <죽이러 갑니다>의 작가, 가쿠타 미쓰요는 일본의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는 여성작가로 여러 가지 문학상을 휩쓸기도 했다. 하지만 가쿠타 미쓰요가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소설 소재로는 도발적인 소재를 골랐음에는 틀림없다.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죽이러 갑니다/스위트 칠리소스/잘자, 나쁜 꿈 꾸지 말고/아름다운 딸/하늘을 도는 관람차/맑은 날 개를 태우고/우리의 도망)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녀는 어김없이 일본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며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살의, 이른 바 살인충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겨서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내면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오는 게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시도 때도 없이 혹은 아무이유 없이 괜히 살인충동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를 다룬 것이 아니다. 학창시절 이유도 모른 채 선생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반 학우들 앞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망신을 당했던 구리코(죽이러 갑니다),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사오리(잘 자, 나쁜 꿈 꾸지 말고)를 비롯해 어찌 보면 살의를 느낄만한 합당한 이유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러는 자신에게 반항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춘기의 딸에게 살의를 느끼기도 하는 주부 가요코(아름다운 딸)는 닭고기를 썰다가 말싸움을 시작하는 딸의 몸을 찌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육아휴가를 지내고 이제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지만 자신의 직장과 아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히로에는, 심지어 딸 슈코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죽이러 갑니다). 그 뿐이 아니다. 불륜을 저지르다가 아내 아사미에게 들켜서 암묵적으로 아내의 요구를 거절 할 수조차 없고, 아내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남편 시게하루(하늘을 도는 관람차)는 아사미의 미소와 말투 하나하나에도 온통 신경이 곤두 서 있다. 아사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시게하루는 알 수 가 없다. 아사미는 단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웃고 싶을 때 웃을 뿐이다. 함께 관람차를 탈 때 아사미가 바깥으로 쓰레기를 버릴 때도 시게하루는 끝까지 안절부절 못한다. 이보다 더 숨 막히는 순간이 어디 있을까.

  살다보면 아마도 죽이고 싶을 때 보다 본인 자신이 죽고 싶은 순간이 더 많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소설에서는 그 어느 주인공도 죽이거나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 남자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여고생 사오리는 공원에서 남동생과 함께 특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짖궂은 예전 남자친구를 마주치자 ‘미안해’라는 말 밖에 내뱉지 못한다. 반항적이고 고집불통인 딸이 차에 치이기 순간, 가요코는 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헤어진 연인의 강아지를 죽이기 위해서 강아지를 납치했지만 무릎에 강아지를 올려놓고 운전대를 잡은 채 눈물을 흘리는 노리유키를 비롯하여, 모두 결정적으로 결말을 내진 않는다. 그렇게 살의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어쩌면 작가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다독여 잠재운 것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살의'를 '죽인' 것이다.

   이 소설은 여느 일본 소설과 같이 등장인물들의 심리변화를 짧은 문장 속에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너무 간결한 나머지, 심심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소설의 장점인 간결함이 지루함과 단조로움과 같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죽이러 갑니다>는, ‘살의’라는 살벌하고 건조한 소재를 그러한 간결한 문장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한층 더 긴장감을 생성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그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느껴지는 파장은 생각 외로 크고 길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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