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깊은 울림 준 '촐라체 빙벽'
삶에 깊은 울림 준 '촐라체 빙벽'
  • 정보화 시민기자
  • 승인 2008.07.2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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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삶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까지 완벽히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만큼 될까, 아니 진정으로 자기 자신과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이 눈곱만큼이나 우리에게 있는 걸까.

타인은커녕 자신조차 추스를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책을 만났다. 박범신 작가의 <촐라체>(푸른숲.2007)다. 담담하게 시작하는 필체는 점점 독자들을 촐라체 빙벽으로 이끈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어느새 주인공 상민과 영교를 따라 영하 30도 산허리를 걸어가듯 팔 다리가 아릿해왔다.

보통 책 띠지의 말은 너무 과장되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낚시용일 경우가 많은데 비해, '가장 차갑고 가장 뜨거웠던 7일'이라는 이 책의 문구는 책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차가움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에베레스트 촐라체를 말하고, 뜨거움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나들며 나눈 주인공들을 의미한다.

스토리는 진부하도록 간단하다. 서로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난공불락의 산을 오른다. 형에 대한 아픔과 삶에 대한 뼈저림을 안고 젊음의 혈기로 촐라체에 오르는 영교. 사랑하는 여인과의 헤어짐을 뒤로 하고 아비 다른 동생과의 등반을 시작하는 상민. "외로워서요.."라며 절로 떠난 아들을 기억하며 베이스 캠프의 고독을 지키는 '나'. 이들의 상처는 때론 욕지기를 통해, 외적인 압박과 상처를 통해 허물이 벗겨지고 아물어간다.

3박 4일의 단출한 계획으로 최소의 장비만을 갖고 오른 촐라체. 그러나 거대한 얼음 산은 쉬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음식도 물도 없이 길어지는 나날, 그 안에서의 싸움. 상대는 남이기고 하고 자신이기도 하다. 오롯이 자신을 만나고 타인을 이해해 가는 과정은 얼마나 어렵던가!

오해를 풀고,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기까지 그들은 너무나 많은 걸 희생한다. 그러나 어떠랴. 결국 그들은 마음이 통한 것을. 여전히 그들의 삶은 수많은 촐라체로 가득 찼지만 이미 자신들만의 힘으로 그 곳을 통과한 그들에게 삶의 빙벽은 아파도 넘을 수 있는 벽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어쨌든 그들을 살았고 그 무엇으로도 바꿔 얻을 수 없는 자신감과 삶의 동지를 얻었다.

낮은 도봉산 자락 오르기도 귀찮아하며, 작은 등벽이라도 보일새면 무서움에 오금저릴 나로서는 그들이 겪는 그 험준하고도 위험천만하며 생을 내다 바쳐야 하는 등반이 쉬이 이해되진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 순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니 책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내면 속에 빠져 함께 빙산 속을 헤매고 다녔을지 모를 일.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없었지만 마음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니 올라오는 느낌은 아. 읽어본 자만이 알 쓰나미로 남겨둘까.

읽는 내내 든 생각 한 가지는 정말 저 곳을 저리 고생해가며 오르내린 후에는 나도 삶에 조금은 가까워질까 하는 헛된 기대였다. 아무리 자신을 찾고 오롯이 생에 가까워지고 싶다 하더라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그 높은 산맥을 오르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실망하진 말자. 바로 그런 범인들을 위해 픽션의 세계, 소설이 있는 것이니까. 아마 직접 겪은 사람에 비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책 한 권을 마쳤을 때 우리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삶을 살아갈 작은 지푸라기 하나를 잡게 되었음을. 책을 읽은 후 우리는 삶에 대한 생각치도 못했던 용기가 불쑥 솟아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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