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꾼다"
"책,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꾼다"
  • 임재청 시민기자
  • 승인 2008.07.2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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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로 보는 금서의 묘한 깨달음


[북데일리] 영국의 오랜 속담에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는 것보다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책은 말이 없지만 책을 읽은 우리가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책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의 욕망을 쓸모 있게 한다.

하지만 지금과는 달리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책을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책은 교서관(校書館)이 간행해 국왕이 신하에게 내린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개인이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 또한 그들만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즉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다지는데 책이 아주 유용하게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의 불평등을 통해 조선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발견하는 책이<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冊)들>(글항아리. 2008)이다. 여기서 위험함의 척도는 성리학적 판단에 있다. 성리학은 성즉리설(性卽理說) 즉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가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지식을 강조했다고 해서 이학(理學)이라 불렀다. 저자 말대로 단순화하자면 성리학은 공부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 책을 보면 조선의 성리학은 세 가지 방향에서 사상을 통제했다.

첫째로 사문난적(斯文亂賊)에 있다. 풀이하자면 성리학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다. 가령, 채수는 <설공찬전>에서 “반역으로 왕위에 오른 자는 결국 지옥에 와서 고생한다.”고 말했다.

당시 유교사회에서 불교사상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왕을 능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이 책은 압수되고 불살라졌다. 박세당의<색경>도 참혹한 화를 당했다. 박세당은 이 책에서 양반도 생산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조세 제도를 개혁해 신분간 불평등을 없애야 한다는 개혁론을 펼쳤다. 그는 소비자에 머물러 있는 양반을 생산자 계급으로 바꿔야 사회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지식의 불평등에 있다.

조선이 성리학의 시대였으며 그 중심에는 사대부들이 권력의 생산자였으며 결국에는 지식을 독점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허균의<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동의보감>은 기존의 의학서들과 달리 당시 기준으로 최신 한의학 이론과 조선의 약물학 지식이 총동원되었다. 그런데도 17-18세기에 창궐했던 홍역과 두창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 이유인즉 이 책의 주된 목적이 개인의(사대부)의 양생술을 실천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문체반정(文體反正)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사학(邪學)을 물리치는 것이다. 사학은 곧 소설(小說)이며 소품(小品)같은 잡서(雜書)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가장 똑똑했던 정조가 가장 싫어했던 책이<원중랑집>이었다. 왜냐하면 김창협이<농암집>에서 “백정과 술장수가 경전을 암송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라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성리학의 사고의 틀에서 삶을 윤리적으로 제도화하려고 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일종의 짝패들이었다. 짝패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용어로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것들이 비슷한 대상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시대와 소통하지 못한 금서(禁書)의 운명은 짝패의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조선시대 금서의 대부분은 지배계층에 도전하는 위험한 사상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는 것에 반작용도 적지 않았다. 사대부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지만 일반 대중들이 책을 읽고자 했던 시대적 요청을 외면한 결과였다. 금서의 사회적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책의 묘한 운명이다. 조선시대를 보더라도 책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데 있어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현실정치를 비판하는 방법 역시 책이 일등공신이었다. 책을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금서를 통해 알 수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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