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희의 연애잔혹사]② 동거? 그 찬란한 착각!
[고윤희의 연애잔혹사]② 동거? 그 찬란한 착각!
  • 북데일리
  • 승인 2008.02.0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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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G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립을 하고 혼자 사업체를 일구어 성공한 당찬 여자다. 부모에게 단 한 푼도 지원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20대의 나이에 35평짜리 아파트를 사고 BMW를 샀다.

그렇게 일만 하다 보니 외롭고 사랑이 고팠던 그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머리 아픈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했다. 일만으로도 머리 아픈 그녀에게 두 가족이 얽히는 결혼은 언감생심의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G가 다른 여성들에 비해 사대를 너무 앞서가는 여자였던 걸까. 생활비는 직업이 없었던 남자 대신 돈을 많이 버는 그녀가 전액을 댔다. 생활비뿐이랴, 그것도 모자라 용돈도 줬다. 핑크빛 연애감정에 불타올랐던 초기에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심지어 일도 더 잘 풀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협화음은 시작되었다. 처음 용돈을 쥐어줄 때 고마워하던 남자친구는 차츰 당연하게 더 많은 용돈과 생활비를 요구했다. 한 술 더 떠 그녀가 일을 하며 밤을 샐 땐 그녀의 외제차로 다른 여자를 꼬셔서 드라이브를 다니고 나이트 클럽에 나가 부킹하기 바빴다.

책임감이 강한 그녀는 그래도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찍부터 독립을 선택하고 자기 길을 걸어왔듯 자신이 선택한 사랑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다. 반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G에게 기생해서 살아 온 그 남자는 어떤 의무나 책임도 지려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피폐해져 갔고 지지고 볶고 살았던 7년을 뒤로 하고 둘은 결국 헤어졌다. 기가 찬 것은 마지막 그 남자의 행동. 동거 하던 집에서 짐을 뺀 남자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긴 것은 3만 5천원이라 적힌 택배비 고지서였다. 얼마나 당했는지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지만, 막장까지 갔기에 그 택배비를 그에게 물릴 것인가 자신이 그냥 내고 말 것인가 한참이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하면 뭐하랴! 7년 세월도 어찌하지 못한 그 놈의 저질 습관을…. 7년의 세월 동안 남은 것은 이 택배비 3만 5천원이란 말인가? 결국 택배비는 그녀가 지불하는 것으로 7년간의 긴 동거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미혼 동거 부부가 사회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1970년대부터다. 그때 우리나라의 동거는 노동자 계층에서 생계 차원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일단 같이 살면서 함께 절약하고 모아서 살림 밑천을 마련하자’는 생계적 의미의 동거였다면 최근에는 ‘살아보고 결혼하라!’는 멋진 선택적 의미로 동거를 외친다.

동거를 하면 뭐가 좋을까?

계약서가 없으니 서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결혼은 두 집안의 거래이자 사회적 약속이니 책임과 의무가 동반된다. 동거는 그런 점에서 홀가분하다. 남자․여자 딱 잘라 구분되는 가부장적 역할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고 남녀 간의 관계가 더 평등해질 수 있어 좋다. 혹자들은 둘 사이에 법적인 구속력이 없으니 서로에게 더 긴장감과 소유욕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사랑도 오래 간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위에 누구 하나 “나는 남자랑 동거해요.”라고 나서서 말하는 사람을 못 봤다. 그만큼 아직도 한국에서 동거는 어둡고 쉬쉬 숨기고 싶은 ‘과거’로 치부된다.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이라면 남자랑 동거를 한 여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색안경을 끼고 “남자랑 동거까.지. 했어~”라고 숨죽여 말하지 않겠는가.(아니라면 넘어가자!) 기득권층이 50대 어르신들인 한국의 문화 배경에서 동거는 아직 ‘스캔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결혼 제도가 붕괴되고 있는 서구 사회에서 ‘미혼의 동거족’은 이미 확실히 하나의 가족 유형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성인이 되면 일단 부모로부터 독립해야하는 그들로서는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가 주거비를 보조해 주기도 하고, 세 달치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만 있으면 독립적인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있으니 동거 문화가 쉽게 정착할 만도 하겠다.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보자. 법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판례에서는 동거와 사실혼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다. 사실혼은 사실혼의 구성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인정되며 사실혼의 범위는 서구에 비해 엄격히 제한된다. 10년 동안 함께 살아왔다 하더라도 사실혼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혼인 의사가 없었거나 객관적 사회 관념상의 공동생활이 아닐 경우 남녀 간의 동거는 사실혼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동거, 잘 알아보고 깐깐하게 따지고 하자!

금전 문제나 자녀 문제, 그 밖에 동거 생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고 동거를 해도 하라! 결혼의 효용성은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데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동거보다 결혼을 더 많이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사랑 밖에 안 보이겠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선 명확히 짚고 넘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적어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살림을 꾸려 살 생각을 했으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를 감당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7년을 사귀고 택배비 3만 5천원만 남기고 사라진 그 남자 때문에 G는 아직도 남자를 못 믿고 사랑에 치를 떤다. 결혼은 계약서라도 있고 위자료도 있고 사람들의 공인된 인정도 받는다. 하지만 동거는 시작부터 끝까지 법적 보호나 사회적 인정이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자가 대부분 상처를 끌어안게 되고 만다.

사랑해서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이별의 순간, 큰 상처나 피해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쯤 괜찮다고 무시하거나 사랑에 눈이 멀어 너무 용감해지지 않길 바란다. 제도를 무시하는 건 멍청한 것이지 용감한 것이 아니다. 감상에 빠지기 쉬운 일일수록 특히 그것이 개인으로 만난 남녀 간의 사랑일수록 현명하고 영리하게 해야 한다. 동거를 하고 싶거든 철저하게 여우가 되자!

(사진 -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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